'자본주의 잔치' … 오마하는 지금 축제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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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와 함께 주총 참석자들을 위해 기타를 닮은 하와이 민속악기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버핏.[오마하=AP 연합]

"제가 조만간 다른 일자리를 찾을 것 같습니다. 오늘 연주는 (새로운 취업을 위한) 첫 번째 오디션이죠."

5일(현지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시에 있는 퀘스트 센터 전시홀. 워런 버핏(76)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투자자들 앞에서 기타와 비슷한 하와이 전통 악기인 우쿨렐레 연주를 마친 뒤 농담을 던졌다. 자신의 퇴임이 임박했음을 시사한 것이다.

버핏의 고향인 오마하는 인구 40만 명 남짓한 한적한 시골 도시. 버핏은 고향에서 칩거하며 세계 주식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은 인물이다. 이날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회장인 퀘스트 전시홀 앞에는 개막시간인 오전 7시 훨씬 전부터 주주들이 우산을 받쳐들고 200m 이상 장사진을 이뤘다. 매년 주총장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버핏을 조금이라도 가까운 자리에서 보기 위해서다.

'투자의 귀재'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세계적 투자가 버핏이 마지막 화려한 불꽃을 태우고 있다. 그의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은 단순한 주총이 아니다. 올해 유망한 투자 종목을 제시하는 투자전략회의를 넘어선 지 오래다. 어느새 건강한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이 됐다. 미국인들은 물론 전 세계 자본가들이 버핏의 주총을 주목하고 있다.

올해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버핏이 최고경영자(CEO)와 최고투자책임자(CIO)로서 주재하는 마지막 주총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때문인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 등 2만7000여 명이 오마하로 몰려왔다. 역대 최대 참석자다. 주주들과 오마하 시민은 도시를 축제 분위기로 만들었다. 노래하고 춤추며 버핏과의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다. 버핏의 얼굴을 보기 위해 자식들과 함께 찾아온 사람도 적지 않다. 이번 주총은 4일 전야제, 5일 주총, 6일 폐막 행사로 진행된다.

1956년 친구와 친척이 맡긴 단돈 100달러를 주식에 투자한 것을 시작으로 버크셔 해서웨이의 자산 규모를 2480억 달러로 키운 버핏은 이미 투자의 전설이 됐다. 세계 2위의 부자인 그는 자기 자산의 80%를 게이츠가 이끄는 자선 재단에 내놓았다. 이제 누구도 그가 미국 자본주의의 건강성을 상징하는 반열에 올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 세계는 버핏의 '마지막 투자'에 눈길이 쏠려 있다. 어떤 후계자를 선택하느냐가 관심이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CEO와 CIO를 겸해 온 버핏은 올 3월부터 후계자를 찾고 있다. CEO 후계자로 3명 정도를 염두에 두고 있고, 차기 CIO는 공모를 통해 고를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버핏은 "현재까지 CIO에 600~700명이 응모했다"며 "3~4명으로 후보가 압축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각자 20억~50억 달러의 자금을 운용해 능력을 검증한 뒤 최종 후계자를 선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CIO 공모에는 전문 투자가뿐 아니라 경제학자, 탈무드 연구가, 요가 달인까지 응모했다. 버핏은 자신의 후계자 자질로 ▶위험을 가려낼 줄 아는 혜안▶독립적인 사고와 안정된 감성▶투자가의 행태를 이해하는 전문적 능력 등 세 가지를 꼽은 바 있다. 버핏은 평소 자회사인 게이코보험사의 CIO인 루 심슨(70)을 최고의 후계자로 언급했지만 "(그는) 나보다 여섯 살밖에 적지 않다"며 더 젊은 후계자를 물색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AP는 "상당수의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가 버핏의 자리를 다른 인물이 대신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투자자들이 버핏에게 더 오래 버크셔 해서웨이를 맡아 달라고 애걸하고 있다고 전했다.

버핏은 이날 주총에서 "전 세계가 우리의 투자 대상"이라며 해외 주식 투자를 늘릴 계획을 내놓았다. 그는"한국주식 20여 종목에 투자하고 있다"며 "앞으로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싶다"고 밝혔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포스코 주식 348만 주(약 4%)를 비롯해 코카콜라.P&G 등 세계 유수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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