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아시아통화기금 조성 적극 나서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아시아판 국제통화기금(IMF)으로 불리는 '아시아통화기금(AMF)'의 출범이 가시화되고 있다. 한.중.일 3국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등 총 13개국은 역내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면 자금을 지원하는 공동기금을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각국 외환보유액에서 갹출한 800억 달러로 기금을 조성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계속 늘고 있는 단기 투기자본은 변덕스럽고 교묘하게 움직이며 통화를 교란한다. 그만큼 각국이 투기자본에 공동 대응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이런 기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통화의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10년 전에 외환위기를 겪으며 국제기금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당시 IMF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IMF 외에 AMF와 같은 또 다른 안전판이 생긴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IMF가 지나치게 미국과 유럽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제 아시아도 독자적인 역내 기금을 만들 정도의 경제규모가 됐다. 중국이 1조202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으로 세계 1위이고, 일본(2위.9090억 달러)과 한국(5위.2439억 달러) 등 아시아 7개국이 외환보유액 10위 안에 들어 있다.

AMF가 출범하기까지 적지 않은 난관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IMF를 통해 국제금융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국의 반대가 예상된다. 아시아가 미국에 맞서는 기금을 만든다는 식으로 감정적 대응을 해서는 득 될 게 없다. 과거 IMF의 가혹한 정책이나 아시아 홀대를 비판하는 것도 썩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보다는 IMF가 중요하지만 외환위기의 위험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이중 삼중의 안전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내세워 국제사회를 설득해야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하기 바란다.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중국과 일본은 상대방에 주도권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로선 중국과 일본의 의견 차이를 조율하며 아시아의 중심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