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펀드를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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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주가지수는 사상 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지만 대표적 간접투자상품 중 하나인 '주가 연계 증권펀드(ELS)'는 10 중 약 4개가 원금을 까먹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일부 펀드는 누적손실로 인해 만기 때 거의 한 푼도 건지지 못하는 이른바'깡통계좌'로 변하고 있다.

만기 때 원금을 손해본 일부 투자자들은 "펀드 판매 당시 일선 창구에서 '원금보장'을 약속했다"며 금융감독당국과 해당 증권사에 민원을 제기하는 한편 판매 증권사를 상대로 소송까지 추진하고 있다.

◇실태=중앙일보가 단독입수한 한 펀드평가회사의 ELS 누적 수익률 자료에 따르면 2일 현재 설정금액 10억원 이상 616개 ELS펀드 가운데 37%에 이르는 230개가 마이너스 수익율을 기록중이다. <수익률 현황 표 내려받기 클릭>

알리안츠운용이 판매한 '해피엔드2 펀드'는 누적 수익률이 무려 -98.8%로 사실상 원금을 모두 날린 것으로 밝혀졌다.

대투운용의 '대한파워 2Star(VIII)파생 4'는 수익률이 -57.9로 나타났고, CJ운용의 'CJTwo-Star15파생상품16', 한국운용의 '해피엔드조기상환2스타3단위파생상품S 1', 삼성운용의 '삼성2Star파생상품24',랜드마크운용의 '랜드마크투스타파생상품LK Ⅱ- 2'등도 각각 50% 이상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중이다.

◇원인= ELS는 종합주가지수와 종목 주가를 연동시켜 원금손실 가능성을 낮추고, 은행 이자율 이상의 수익을 낼 수있도록 고안된 상품으로 지난 2003년부터 발매됐다.

예컨데 발매이후 삼성전자의 수익률이 종합주가지수 상승률을 웃돌면 지수상승률 이상의 일정 수익율로 펀드를 조기상환하지만 만기 때까지 삼성전자 상승률이 종합지수 상승률을 밑돌면 일정 비율을 적용해 원금을 까먹는 식으로 설계됐다.

증권사들이 이런 상품을 고안한 것은 대세가 상승국면으로 들어설 경우 우량주들의 주가 상승률이 종합주가지수 상승률을 앞지를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증권사들의 대세상승 전망은 맞아 떨어졌지만 일부 초우량주들의 주가 예측은 실패했다. 삼성전자,현대자통차, 삼성SDI,LG필립스 등 증권시장에서 초우량주로 대접받던 종목들이 대세 상승국면에서 철저히 왕따를 당하면서 원금을 까먹는 펀드들이 속출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지난 3년여동안 종합주가지수는 약 90% 올랐지만 삼성전자의 주가는 15% 정도 오른데 그쳤다.또 현대자동차 등 증권사들이 ELS에 연계시켰던 다른 우량주들의 주가도 게걸음을 친 경우가 많았다.

중도 환매를 어렵게 한 약관도 ELS 펀드의 투자손실을 키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중도 환매 수수료를 많게는 잔금의 10%로 적용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상황이 급반전되는 요행수'(주가 급등)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원금보장에 대한 규정을 애매하게 만들어놓고 상품을 판매한 증권사들의 행태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들이 많다.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해당 상품 약관에'원금 보존을 추구', '원금 일부를 보장'등의 문구를 넣어 투자자들을 현혹시켰다는 주장이다.

◇법정비화 조짐=ELS펀드 판매는 2004년이후 절정을 이루었다. 이들 펀드 가운데 상당수가 이달에 만기가 돌아온다.증권업계에 따르면 증권과 은행권이 2003년 이후 판매한 ELS 잔고는 약20조원에 이르며, 이달중 만기가 돌아오는 물량은 줄잡아 5000억원 정도.

KIS 채권평가의 최혜영 과장은 "지금까지 손실을 기록한 ELS 발행액 합계가 1조원 가량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만기도래로 이미 손해를 본 투자자들은 금융감독원과 해당 증권사에 민원을 제기하는 등 분쟁이 늘고있다.일부 투자자들은 "창구직원이 원금 보장을 약속했다"며 증권사와 해당 직원을 고발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7만여 명에 이르는 펀드 투자자들의 인터넷 모임인 다음 카페 펀드스쿨(www.cafe.daum.net/fundschool)에는 최근 원금을 까먹고 있는 ELS의 처리 문제로 고심하는 투자자들의 의견이 크게 늘고 있다.

ID가 '그녀석'인 회원은 "안전과 고수익을 약속하는 펀드매니저를 믿고 투자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면서 "원금보장에 대한 설명이 턱없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ID 'csuss'는 "나도 원금손실이 이만저만 아니다"라며, "가입할 때 펀드매니저의 말만 믿은 게 큰 실수였다"는 댓글을 남겼다. ID가 '아로'인 투자자는 "상품의 수익.손실과는 무관하게 판매사만 돈을 버는 상품 구조에 문제가 있다"면서 "원금 손실에 대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 증권사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률전문가들은 약관에 명백히 '원금보장'을 규정해 놓지 않았다면 투자자들이 불리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규선 변호사는 "결국 피해를 입은 투자자가 창구직원의 '원금보존'약속을 입증해야만 하는데 녹음이나 기타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증권사에 유리하게 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사태가 심각해지자 G증권 등 펀드판매 규모가 큰 증권사들은 최근 비상대책반을 만들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며 투자자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G증권의 한 관계자는 "원금보장을 약속하지 않은 만큼 투자피해는 당연히 투자자들이 져야한다"면서도 "만일의 경우 집단소송에 전전긍긍하고 있는게 사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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