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사오정 불안" 직장인도 도전 열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지난달 직장을 그만둔 李모(27)씨는 주말이면 서울 강남에 있는 모학원의 'MEET 대비 심화반'을 찾는다. 대학 때 쳐다보지도 않았던 생물학 교재를 끼고 다닌다. 李씨는 "불안한 직장 생활을 계속하느니 안전한 전문직의 길을 걷기 위해 꾹 참고 1년간 수험생으로 살겠다"고 말했다.

유명 사립대의 생물학과 학생인 李모(22)씨의 목표도 의학.치의학 전문대학원이다. 李씨가 수강하는 생물학 전공 과목 수업엔 지난해부터 인문계열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들의 목표도 의학.치의학 전문대학원이다.

이처럼 대학가는 물론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의학전문대학원 열풍이 뜨겁다.

16일 '제2의 수능'으로 불리는 'MEET(의학교육입문검사).DEET(치의학교육입문검사)'시험계획이 확정됨에 따라 의학전문대학원을 통해 인생 역전을 꿈꾸는 수험생들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의대 고시 열풍에는 취직의 좁은 문을 간신히 통과해도 '삼팔선(38세 체감 정년)-사오정(45세 실제 정년)'을 넘어야 하는 불안한 인생을 사느니 평생 직장을 택하겠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

실제 지난달 29일 서울 동국대에서 열린 사설 기관 주최의 전문대학원 입시 설명회장에도 1천여명이 몰려들어 좌석은 물론 복도와 통로 계단까지 가득 메웠다. 이 기관이 전문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7백46명) 연령층을 조사해 본 결과 70%가 20~27세이며, 28~35세도 16.9%로 조사됐다.

문제는 전문대학원 입학 문이 좁다는 데 있다. 2005학년도에 문을 여는 4개대 정원은 1백65명. 이들 대학은 정원만큼 학부 과정의 의예과 선발을 중단한 상태여서 전문대학원이 생긴다고 해서 의사가 될 길이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입시 시기가 고3에서 대학재학 기간으로 늦춰질 뿐이다.

이 때문에 전국 이공계열 학장들은 "전문대학원 때문에 가뜩이나 기피 대상이 되고 있는 기초학문이 붕괴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미 서울.부산 등 주요 도시의 학원가에서는 MEET.DEET와 유사한 미국의 의과대학입학자격시험(MCAT)이나 치의과대학입학자격시험(DAT) 시험지는 물론 호주의 의대입학자격시험(GAMSAT) 문제지까지 입수해 시험에 대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도 "아무리 사고력 측정 위주로 문제를 낸다고 해도 입시 과열이나 사교육 열풍을 막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강홍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