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그룹 칼베회장/95년 불 대권에 도전(해외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재무국장·국립은행장 거친 전문경영인/「제2의 페로」… 정치적 발언으로 잦은 파문
프랑스에도 「제2의 페로」가 등장했다.
프랑스 최대의 자동차회사인 푸조그룹의 자크 칼베회장(61)이 오는 95년으로 예정된 프랑스 대통령선거 출마 의사를 밝히고 나섬에 따라 미 텍사스의 돈많은 기업가 로스 페로가 오늘날 미국에서 일으키고 있는 바람이 대서양 건너 프랑스에도 불어닥칠 날이 올 것인지 프랑스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칼베회장의 대통령출마 의사표명이 프랑스사람들에게 새삼 놀라운 일은 못된다. 그는 이미 전부터 종종 정계진출 의사를 밝혀왔기 때문이다. 유럽공동체(EC)와 일본간의 자동차협상이 타결되기 직전인 지난 90년 7월 그는 『일본에 문을 열어줄 경우 프랑스산업 보호를 위해 푸조회장을 그만두고 정치에 투신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에는 『아무도 내가 정치에 나서는 것을 바라지는 않겠지만 상황이 파국으로 치닫는다는 판단이 서면 내 소신을 펼치기 위해 정치에 손을 댈 수도 있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구체적으로 대통령 출마를 거론하며 정계진출 야심을 본격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 프랑스사람들은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는 페로가 자수성가형의 오너기업가인데 비해 칼베회장은 푸조그룹에 영입된 전문경영인이라는 점에서 두사람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둘다 보수적 성향을 지녔다는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사람 다 기업계 출신이라는 점에서 말하기 좋아하는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판 로스 페로」 운운하며 그의 등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부친이 교사인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코스인 국립행정학교(ENA)를 나와 푸조그룹회장에 오르기까지 눈부신 출세가도를 달려왔다.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이 재무장관으로 있던 70∼74년 재무부국장으로 핵심참모역할을 했고 사회당정권이 들어서기 전인 79년부터 3년간 프랑스 최대의 국영은행인 파리국립은행(BNP) 은행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후 그는 프랑스 최대의 민간기업인 푸조그룹에 영입돼 84년부터 8년째 회장으로 일하면서 푸조를 경영위기에서 살려냈다. 막대한 누적적자로 파산지경까지 몰렸던 푸조는 그가 회장을 맡은 이듬해부터는 바로 흑자로 돌아서 지금까지 연속 7년 흑자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 푸조는 55억3천만프랑(약 10억달러)의 순익을 내 세계자동차회사 가운데 최고의 수익성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격이 독선적이고 카리스마적이란 평을 듣고 있는 그는 경영 정상화를 위해 과감한 감원을 서슴지않고 노조와의 극한 대결을 불사하는 등 그동안 푸조를 철권통치해왔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정치색이 강한 기업인으로 평가되고 있는 그는 정치적 발언으로 자주 파문을 일으켜 왔다. 특히 사회당정부의 정책을 비난하고 일본을 자극하는 발언이 그의 특기. 그는 유럽통합에도 회의적인 입장으로 최근엔 유럽동맹 반대운동에도 적극 가담하고 있다. 그의 푸조그룹회장 임기는 오는 94년에 끝나게 된다. 그때 가서 그가 과연 기업에서 손을 털고 이듬해에 있을 대통령선거에 나가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파리=배명복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