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반야' 낸 지방 문인 송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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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송은일(43.사진)이란 소설가가 있다. 소위 '대박'을 터뜨린 적은 없지만 참으로 부지런히 쓰는 작가다. 등단 12년 만에 장편소설 다섯 권을 냈고, 창작집도 한 권 묶었다. 그것도 모자라 두 권짜리 장편소설 '반야'(문이당)를 최근에 또 발표했다.

"그냥 이야기가 좋아요. 이야기 짓는 게 좋고요."

송은일을 바라보는 문단의 시선은 사실 그리 곱지 않았다. '현대성이 떨어진다''인물이 전형적이다' 따위의 지적이 그의 소설엔 따라다녔다. 그러나 정작 그는 개의치 않는다.

"그런 비판은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아요. 저에겐 이야기 자체가 중요해요.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제 소설 속 인물이 현실에 없는 완벽한(perfect) 인물이라고 비판하는데 지리멸렬한 건 현실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최소한 내 이야기 속에서는 그렇게 억지스럽지 않다고 생각해요." 작가는 이번 소설을 염두에 두고 자신을 향한 비판을 반박했다. 소설은 조선시대 무녀(巫女) 반야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고 있다. 그런데 반야의 신기(神氣)가 여간 신통한 게 아니다. 앞일을 족족 알아맞히는 게 거의 초능력 수준이다.

"그렇다고 반야가 전지전능한 건 아니잖아요. 일종의 소극적인 초능력이죠. 반야가 사람 일은 잘 보지만 굿은 못 하잖아요. 반야의 운명은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는 소설 속 설정인 셈이죠."

바로 여기에 작가 송은일의 특장이 있다. 언뜻 허무맹랑한 옛날 이야기인 듯싶지만, 송은일의 이야기엔 강한 인력(引力)이 작동한다. 그의 소설은 한번 집으면, 물리거나 지루해지는 법이 없다. 여러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서사의 힘 때문이다. 그 강력함은 유장하고 쫀득한 문체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 소재주의란 비판도 오해에 가깝다. 소설 '반야'가 조선조 무녀의 일생이라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사건의 태반은 오롯이 작가의 창작물이다. 소설엔 또 '사신계(四神界)'라는 저항세력이 등장하는데, 그래서 조직 계보와 강령까지 소설에 그려넣었는데, 놀랍게도 이 모든 장치가 오롯이 허구다. 역사소설의 관점에서 외려 역사성이 떨어진다는 소릴 들어야 할 판이다.

"소설 속에서라도 씩씩하고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비현실적이고 허황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어요. 이야기가 좋은 게 바로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러고 보니 그는 지방 일간지로 등단했고, 지금도 광주에, 그러니까 지방에 산다. 중앙 문단은 지방 문인들에게 유독 야멸친 눈길로 바라보곤 한다. 송은일은 그 사례 중 하나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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