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코드」와 전자 식민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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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외국의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좋으냐, 독자적으로 우리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옳으냐는 공방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과 실제 생활에 있어서 그것의 활용은 사실상 별개의 일인 경우가 적지 않다. 새로운 기술의 채용이나 신상품의 개발은 소비자의 절실한 필요보다는 기업의 시장 창출 전략의 결과이기 쉽다.
G코드라고 하는 텔레비전프로그램의 예약녹화 기술도입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당초 공동 개발하기로 한 합의를 깨고 미국 젬스타사에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TV프로그램 예약녹화의 기술을 도입해 라이벌 기업의 뒤통수를 쳤다.』 『국내에서 개발할 경우 원가가 높아져 수출가격에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국내 소비자 가격도 훨씬 비싸기 때문에 기술 도입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열띤 공방의 핵심은 국내 가전업체들이 공동개발키로 한 약속을 깼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안방극장 혁명」을 가져올「마법의 숫자」가 이 시점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냐 하는 문제가 되어야 한다.
G코드란 한마디로 TV프로그램에 고유 번호를 부여해놓고 이 번호만 누르면 해당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녹화되는 장치를 이른다. 다만 소비자는 이를 위해 G코드 예약 장치가 내장된 VTR기계나 리모컨을 새로 구입해야만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비디오기기 보급은 이상 열기 덕분에 폭발적으로 증가해 왔으나 미국 또는 일본의 TV보유 가구 중 70%선 보급률에 비하면 아직 일부 가정에 국한 돼 있다.
게다가 일반 가정에서는 비디오 기기를 소유하고 있다하더라도 예약 녹화하는 예가 그리 많지 않다. G코드를 채용하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와는 매체 환경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대도시의 경우 공중파TV가 7∼8개나 되고 케이블TV·위성방송 등 뉴미디어의 보급과 하루 24시간 방송체제는 예약 녹화를 유용한 것으로 만든다. 또 일본의 경우도 공중파가 많다.
국내에서는 만의 하나 G코드의 도입이 안해도 좋을 TV시청의 기회를 넓히는데에만 도움을 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나라 방송이 해야 할일은 유명무실한 음성다중 방송이나 텔리텍스트와 같은 것이 아니라 청각 장애자를 위한 특수 자막 방송 같은 것이다.
일부에서는 G코드를 엄청난 기술인듯 소개하고 있으나 우리 기술 수준도 거의 개발 단계에 와있다고 한다.
기술과 정보를 앞세운 기술 제국주의가 세계를 지배해 가는 상황에서 높은 사용료를 주면서까지 이 기술의 도입을 둘러싸고 무분별한 경쟁을 해도 좋을까. 전자식민주의를 경계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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