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원 법률 공부 열 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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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노조원들에게 실익을….』
일부 노동운동권들 사이에 법적 대응력을 강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있다.
이는 투쟁만능의 노동운동은 한계성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데다 개개 노조원의 「불필요한 피해」를 줄여나가자는 노동운동권 내부의 자각에 따른 것이다.
전태일 노동자료연구실의 박승옥 대표가 최근 발표한 「한국 노동운동, 과연 위기인가」라는 논문은 투쟁만능의 노조운동이 바뀌어야 한다는 논거를 잘 설명해 준다.
『노조운동의 전투성을 강조하다보면 파업투쟁을 절대시하게되고 모든 것을 투쟁의지의 문제로 환원시켜 노조를 분열시키고 조합원·노동자 전반, 나아가 일반대중의 지지를 잃게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보다는 실제로 관계법을 몰라 피해를 본 경험들이 법을 통한 실익을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해고를 당한 A전자 김모양(24)은 소송을 냈다가 1심에서 패소한 뒤 2심에서는 승소할 것으로 기대를 했어요. 하지만 보강 준비를 하던 중 항소심 신청 기한을 넘기는 바람에 2심 재판을 받지도 못하고 발만 굴러야 했지요.』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서노협) 법규국 오재헌 부장(33)의 말.
오 부장은 『법을 제대로 알고 사용자나 정부에 대응하면 불필요한 피해는 줄여 나갈 수 있는데 그동안 이런 측면이 도외시됐었다』며 『기존 노동운동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다각적인 법적 대응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현황=노동단체 중 「고문변호사」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은 부산노동단체협의회(부노협)-.
89년 3월 노무현씨 등 7명의 변호사들로 고문 변호사단을 구성, 단위노조들이 이들 변호사들과 계약을 체결해 각종 법률상담을 받고있다.
계약이 체결되면 조합활동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비롯해 해고·임금문제 등 집단적인 법률상담을 받게된다.
현재 산하 13개 노조가 계약을 체결했고, 미계약 노조도 부노협이 주관하는 매월 정기법률상담에는 참가하고있다.
비용은 조합원 2백명 이하가 매월 1만원인 것을 비롯, ▲2백∼5백명은 2만원▲5백∼1천명은 3만원▲1천∼2천명은 5만원▲2천명이상은 10만원이다.
한 관계자는 『상담을 통해 단순한 법지식만 익히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를 주고받음으로써 노조원들이 용기를 얻게된다』면서 『고문 변호사제는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무금융노련도 지난해 고문변호사(조용환 변호사)를 위촉, 국회의원선거법·임금총액제 등 현안을 놓고 자문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6월 광역의원선거당시 최재호 위원장이 「노동운동 탄압하는 정당·후보를 찍지 말자」는 내용의 지침을 배포, 선거법위반으로 구속되자 조 변호사가 『선거법이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표시를 보장한 헌법이 위배된다』며 변론을 맡기도 했다.
이 같은 고문 변호사제 이외에 법률안내책임자나 팸플릿 발간도 활발하다.
서노협은 최근 「노동조합 고소·고발·구속·해고 손해배상청구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3천부 발간, 산하노조에 배포했다.
노동인권회관(대표간사 권인숙)도「부도에 대한 노조의 대응지침」이라는 책자를 구로공단 노조에 배포했다.
◇평가 및 전망=노동운동권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대검관계자는 『「정치주의」→「국민주의」로 흐르는 노조 활동 중 우리 노조가 「경제주의」단계로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며『긍정적 변화라고 인식된다』고 말했다.
조용환 변호사는 『노조의 법적 대응은 패소율의 증가, 재정적 문제 등으로 아직까지는 「정신적 위안」의 단계에 머물고 있다』면서 『노·사·정·법원 모두 진정한 의미에서의 법 준수 노력이 요청된다』고 말했다.<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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