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소녀의 「가출 일기」/“세상이 너무 미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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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성폭행 당한뒤 부모 「무관심」까지…/술집서 하루 양주 한병·담배 두갑/어른들에 끌려가 걸핏하면 외박/가해자 10대들 10개월만에 잡고보니/부모가 사준 오토바이 즐기던 폭주족
중학 2학년 여학생이 저녁나절 대학캠퍼스에 친구와 함께 놀러갔다가 10대 「폭주족」9명에게 끌려가 집단성폭행을 당한뒤 맞벌이 부모의 무관심속에 충격을 못이겨 가출,카페접대부로 전전하다 경찰의 청소년 유해업소 일제단속에서 적발돼 10개월만에 부모에게 돌려보내졌다.
경찰은 소녀의 진술에 따라 사건 발생 10개월만에 범인검거에 나서 3명을 검거했으며 이들도 대부분 중산층 이상 정상 가정 출신들로 3년 전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몰려다니며 못된짓을 해왔으나 가정의 지도도,경찰의 단속도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나 큰 충격을 주고있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30일 남가좌동 일대를 무대로 비행을 일삼아온 불량서클 「연합군파」회원 김모군(19·K고2년 중퇴·서울 남가좌동) 등 3명을 특수강도·강간 등 혐의로 구속하고 심모군(19·K고1년 중퇴·술 남가좌동) 등 달아난 일당 5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나머지 1명은 다른 강간범죄로 지난 3월 구속돼 6개월형을 선고받고 춘천소년원에서 복역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7월 중순 서울 명지대 구내에 밤 8시쯤 친구와 함께 산책나온 서울 B여중2학년 조모양(13·서울 사직동)을 유인,뒷산으로 끌고가 번갈아 성폭행 했다.
조양은 이튿날 어머니에게 사실을 고백,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했으나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한데다 맞벌이 부모의 무관심,민망해 하는 동생의 표정 등이 괴로워 학업에 의욕을 잃고 심한 정서불안을 보여오다 2학기 들어 학교를 그만두었다.
「식구를 보기가 괴롭고 세상이 밉다」고 말해오던 조양은 부모들 몰래 집을 나가 서울 돈암동 「카페골목」에서 비슷한 또래들과 어울리며 술·담배를 입에 대기 시작했다. 그래도 허전함을 메울 수 없었다.
그런데 조양은 기어이 옷가지를 싸들고 집을 나왔다.
처음 조양은 종로의 C레스토랑에 월 25만원을 받기로 하고 취업했으나 환풍기를 고장내는 바람에 해고돼 경기도 광명시 술집거리로 흘러들었다. 손쉬운게 접대부였다. 여러집을 전전했다.
조양은 26일 낮 서울 돈암동의 친구를 만나러 외출했다가 어린 몸매에 어울리지 않게 짙은 화장과 야한 차림새를 수상히 여긴 경찰의 불심검문에서 자초지종이 드러나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귀가조치 됐다. 경찰은 조양의 진술에 따라 광명시의 D술집을 급습,조양 외에 2명의 미성년 접대부를 구출해 냈으며 남가좌동에서 이틀간의 잠복끝에 28일 김모군 등 일당을 검거했다.
조양은 경찰에서 자신의 주량이 양주 1병이며 하루에 담배 2갑을 피웠고 1주일에 2∼3번 꼴로 어른손님을 따라 외박을 나갔다고 진술했다.
타일건재상을 하는 조양의 아버지(42)와 가정용품 외판원으로 맞벌이를 하는 조양의 어머니(39)는 28일 경찰의 연락을 받고 달려와 너무도 변해버린 딸의 모습을 보고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채 망연자실 했다.
조양 아래로 아들(중1) 하나를 더 두고 있는 조씨부부는 그동안 딸을 찾으러 아현동·천호동 등 서울의 유흥가를 다 뒤졌다며 『그때 조금만 더 따뜻이 감쌌더라면 이 지경이 됐겠느냐』고 통곡했다.
범행을 저지른 10대중 두목격인 김모군(19)은 아버지가 병원간부,어머니가 옷가게를 하는 여유 있는 가정의 외아들로 지난해 7백50㏄ 일제 가와사키 오토바이를 부모가 사주었고 생일선물로 70만원짜리 강아지를 받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한창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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