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검은 황제’ 대관식 임박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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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16면

황제 미하엘 슈마허가 떠난 뒤 F1은 후계자를 찾고 있다. 인기는 최상급이지만 실력이 부족한 라이코넨(맨위)과 실력은 최고지만 스타성이 떨어지는 알론소(위). 2% 부족한 이들을 제치고 모든 것을 갖춘 해밀턴(큰사진)이 떠올랐다. [AP] 

“사인해 주세요.”

1995년 유로 오토스포츠 시상식장. 얼굴이 검어 맑은 눈이 더욱 빛나 보이는 꼬마 녀석이 종이를 쑥 내밀었다. ‘F1의 대부’ 맥라렌 메르세데스 F1팀 론 데니스(60ㆍ영국) 회장은 ‘검은 꼬마’에게 사인을 해주며 나이를 물었다. 꼬마는 “10살”이라고 했고, 데니스 회장은 “9년 안에 다시 연락하라”고 타이르듯 말했다.

그러나 9년이란 시간은 너무 길었다. 2년 후 꼬마는 유럽 카트 시리즈(주니어 자동차 경주대회)를 평정했고, ‘맥라렌 드라이버 지원 프로그램’에 사인했다. 맥라렌의 영재 프로그램은 데니스 회장이 ‘나의 아름다운 여인(My Fair Lady) 프로젝트’라고 이름을 바꿔 부를 정도로 애착을 갖고 있는 작업이다. 꼬마는 맥라렌으로부터 500만 파운드(약 92억원)를 지원받았다. 그리고 2007년, 22살 청년이 된 꼬마는 레이싱의 정점 F1에 데뷔했고, 두 대회만에 시즌 2위에 올라섰다. 현재 1위는 맥라렌 팀 동료 ‘월드 챔피언’ 페르난도 알론소(26ㆍ스페인)다. 참고로, 1980년부터 맥라렌을 이끌어온 데니스 회장은 아일톤 세나(브라질) 등 세기의 수퍼스타와 함께 F1을 휩쓸었던 거물이다. 재산은 9000만 파운드(약 1657억원)에 이른다. 데니스 회장이 아끼고 아끼던 보물 ‘검은 꼬마’, F1 최초의 흑인 드라이버 루이스 해밀턴(영국)이 공석이 된 ‘F1 황제’의 후계자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이미 ‘F1의 타이거 우즈’로 불리고 있다.

2007시즌 두 번째 대회인 말레이시아 그랑프리가 열린 8일 세팡 서킷. 맥라렌의 두 드라이버가 1ㆍ2위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우승은 알론소, 준우승은 해밀턴이었다. 3월 18일 호주에서 열린 시즌 오픈 대회에서 우승한 페라리의 키미 라이코넨(28ㆍ핀란드)은 3위를 차지했다. 실력으로는 슈마허에 뒤지지 않는다는 알론소(그는 스타성이 떨어진다), 인기만큼은 최고라는 라이코넨(최정상급 실력은 아니다)은 ‘포스트 슈마허’의 1등 주자들이다. 그런데 인터뷰실에서 두 명의 낯익은 스타는 들러리였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취재진은 해밀턴에게 집중했다. 열기를 참지 못한 해밀턴이 생수병에 담긴 물을 머리에 붓자 카메라 플래시가 ‘파바박’ 터져 나왔다. 옆에 앉은 중국 여기자는 “귀엽다. 섹시하다”는 말을 연방 내뱉었다.

우승자는 알론소였지만, 기자들은 ‘우승을 만든 것은 해밀턴’이라고 믿는 듯했다. 알론소가 안락하게 선두를 질주할 때, 2위 자리의 해밀턴은 페라리의 거목들과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다. 해밀턴은 “백미러에 두 개의 붉은 점(페라리의 두 머신)이 보였다. 나의 영웅들이었다. 싸움을 피할 수 없었다”고 했다. 커브길에서 해밀턴은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춰 알론소의 독주를 도왔다. 레이스 초반 3위로 달리던 페라리의 펠리페 마사(26ㆍ브라질)는 해밀턴을 넘어 알론소에 도전하려고 했다. 슈마허와 함께 페라리를 이끌었던 마사가 아닌가. 그러나 그는 해밀턴을 추월하려다 경로를 이탈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 이번에는 라이코넨이 달라붙었다. 해밀턴은 “라이코넨이 나를 사냥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먹이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라이코넨이 옆에 앉아 있었지만, 해밀턴은 위트가 담긴 말을 쏟아냈다.

1950년 해밀턴의 할아버지는 캐리비안 남쪽 작은 섬나라 그레나다를 떠나 영국에 정착했다. 할아버지는 철도 노동자로 일하며 가족을 먹여 살렸다. 그의 성실함 덕에 아버지 앤서니는 제도권에서 공부했다. 앤서니는 정보기술(IT)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조금씩 부를 축적했다. 아버지 세대의 도전과 건실한 생활로 해밀턴은 풍부한 물적 토대 위에서 자랐다. 아버지 앤서니는 “루이스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운동 능력도 대단했다. 그래서 8살 때부터 카트를 태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카트를 탄 지 2년 만에 해밀턴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오토 스포츠 시상식까지 참가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데니스 회장을 만난 것이다. 해밀턴은 “단계를 높여 대회에 나가도 늘 우승했고, 언제나 내가 제일 어렸다”고 했다.

타이거 우즈(골프), 제임스 블레이크(테니스), 데브라 토마스(피겨 스케이팅). 이들은 ‘백인 중산층의 고급 스포츠’라 불리던 골프, 테니스, 겨울 스포츠에서 세계 정상에 오른 흑인들이다. 이들은 편견을 깨고 희망을 썼다. 서구 사회는 ‘백인 주류 스포츠에서의 흑인 스타’가 엄청난 마케팅 수단이 된다는 사실에 눈떴다.

F1은 오래도록 흑인 드라이버의 탄생을 꿈꿔왔다. ‘백인 중산층 이상’이라는 F1의 카테고리가 깨진다는 것은 ‘F1이 전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돋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프리카와 캐리비안의 피가 흐르는 영국인 해밀턴, 그는 스타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지니고 있다. 젊음(가능성)ㆍ실력ㆍ외모, 그리고 지금껏 어떤 F1 드라이버도 가지지 못한 독특함(exotic & unique)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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