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주 대하소설 『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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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백정집안의 아버지와 곱추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한 천박한 사내가 마침내 한국 사회주의운동에 불을 지르게 된다는 감춰진 근대사 이야기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아온 정동주 대하소설 『단야』가 최근 전7권 완간과 더불어 초특급 베스트셀러로 부상하고 있다.
연전에 베스트셀러가 된 여러 소설들을 보면 대개 『동의보감』 『토정비결』 등 이른바 고전재해석류들이나 『종이시계』 『세월』 등 번역소설류 두 부류가 주종이었다. 게다가 80년대 중후반까지 독서시장을 폭넓게 점유하던 사회과학서적들이 된서리를 맞고있던 판에 과연 이런류의 사회과학적인 소설형태가 새삼 어떻게 대중 속으로 파고들 수 있을까 하고 다소 의아스럽게 이 책을 지켜보던 출판계의 시선은 이제 무색해졌다. 나아가 「소설 대중화는 모험 없이 성취되지 않는다」는 새로운 가설 앞에서 대안을 마련키 위해 부심하고 있는 눈치다.
천민 출신으로 봉건적 계급구조와 일제의 침탈 속에서 실천적인 민중해방운동의 선봉이 된다는 짐짓 딱딱해 보이고 구태의연한 민중주의 소설을 연상케 하는 이 이야기는 어떤 이유에서 이처럼 많은 대중을 맞아들일 수 있었는가.
우선 이 소설 앞에서 품게되는 호기심은 『단야』라는 제명을 향할 것이다. 작가가 머리맡에서 밝히고 있듯 단야란 「대장간화덕 속에서 풀무질로 새파랗게 핀 숯불에 잘 달구어진 무쇠」라는 뜻을 가진 보통명사다.
이 야멸차고 서민적인 보통명사를 실명으로 달고, 멸시 받을 운명을 지고 태어나 마땅히 버림받아야할 한 인물이 온몸으로 역사참여적 삶을 살다가 갔다는 이야기가 세세하고 입담 좋게 7권의 분량으로 펼쳐져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오래 당하고 눌리며 참고 지내는 우리네 대중들의 울분을 시원스럽게 대변해주는 일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천민으로 태어나 일제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을 하고 조선독립을 위해 러시아로 건너가 레닌과 접촉하다가 그를 견제한 스탈린에 의해 실종되어 버린, 실제로 살았다는 김단야의 종횡무진한 인생역정을, 한쪽에서는 짓밟히면서도 견뎌내고, 견뎌내면서도 주인이 되지 못하는 한 많은 서민들의 애욕의 사연들로, 다른 한족에서는 구한말의 의병장으로부터 조선공산당 창건의 주역과 배후세력이 되는 실제 인물들의 사회주의적 사건들로 감싸 안으면서 풍성한 이야기 세계를 엮어간다.
역사의 이면사를 복원하되 그 역사적 사명감을 앞세우지 않고 진정한 삶의 이야기로 엮어갔다는 점에서 부담 없이 대중들의 정서와 어우러진 셈이 되겠다.
그러나 대중과 호흡한다는 것 자체가 곧바로 자랑거리는 아니다. 이 소설 속에서 참된 독자들은 재미있는 이야기 이상의 어떤 것을 얻어낸다. 즉 이 소설을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있는 소설로 여기게 되는 이유를 찾아낸다는 말이다.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대목은 첫째 일제의 한국 강점에서의 악랄한 전략의 실체가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것, 둘째 한민족의 시베리아 이주사의 이면 역사가 제시되어 있다는 점, 셋째 김단야가 주장하는 고려연방국 개념이 지금 북한의 고려연방제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는 것 등 실존했거나 현존하는 초기공산주의 성립과정에서의 참과 거짓이 증명되고있다는 점이다. 박덕규<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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