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탄 고기 꼭 잘라내고 먹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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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14면

신인섭 기자

주부 배종화(39ㆍ경기도 용인시)씨는 요즘 식용유를 쓸 때마다 뭔가 찜찜하다.

먹거리 안전의 새 위협들 ① 발암물질 벤조피렌

“식용유에 벤조피렌이란 발암물질이 들어있다고 해서 늘 불안해요.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지….”

배씨에게 벤조피렌이란 낯선 단어가 처음 입력된 것은 몇 달 전. 한 국회의원이 일부 올리브유에서 벤조피렌이 검출됐다고 폭로하면서다. 그래도 이때는 아직 ‘허용기준’이 없는 상태라고 해서 우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참기름ㆍ옥수수기름 등의 벤조피렌 검출량이 ‘잠정 권장 허용 기준’을 초과했다는 보도를 접한 뒤 불안해졌다. 이런 배씨의 걱정은 근거가 있는 걸까.

식용유, 안전한가
현재 식용유에서 벤조피렌의 잠정 권장 허용 기준은 2ppb(ppb는 10억분의 1). 그러나 이 기준을 초과했다고 해서 강제로 수거ㆍ폐기되지는 않는다. 잠정 권장 허용 기준은 말 그대로 ‘잠정’이어서 법적 강제력이 없다. 최근 올리브유ㆍ참기름ㆍ옥수수기름ㆍ들기름 등 일부 식용유에서 벤조피렌이 잠정허용기준 이상(최고 8.9ppb)으로 검출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려할 만한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집에서 식용유를 현재 쓰고 계십니까?”

식용유 전문가인 전주대 외식산업조리학과 정문웅 교수에게 물어봤다.

“우리 가족은 아무 걱정 없이 식용유를 쓰지요.”

정 교수는 “설령 잠정 권장 허용 기준인 2ppb를 몇 배 초과했다고 해서 위험한 양은 아니다”며 “그보다는 가능하면 고기를 숯불에 구워 먹지 말거나 고기의 탄 부위를 먹지 않는 것이 벤조피렌 섭취를 줄이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내분비장애물질 2001보고서 등에 따르면 갈비 바비큐의 벤조피렌 함량은 10.5ppb, 소시지 익힌 것은 12.5∼18.8ppb였다.

행동지침
벤조피렌을 가능한 한 적게 먹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식탁에서 완전 추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려면 화식(火食)을 포기해야 한다. 대기오염이 없는 청정지역으로 이사 가서 살아야 한다. 따라서 차선책은 덜 먹는 것이다. 방법은 이렇다.

첫째, 삼겹살ㆍ숯불구이ㆍ바비큐ㆍ스테이크 등 고기를 불에 직접 구워 먹는 횟수를 줄여야 한다. 고기의 지방성분과 불꽃이 직접 접촉할 때 벤조피렌이 가장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굳이 구이 요리를 먹으려면 석쇠보다 두꺼운 불판이나 프라이팬에 굽는 것이 좋다. 숯불 대신 프라이팬에 구우면 벤조피렌 생성량이 100분의 1로 감소한다. 가열ㆍ조리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권훈정 교수는 “고기가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부위는 ‘벤조피렌 덩어리’라고 보면 된다”며 “탄 부위는 반드시 잘라내고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 기름에 튀기거나 볶은 음식의 섭취도 최대한 줄이는 게 좋다. 고온으로 튀기거나 볶을 때 벤조피렌이 생기기 때문이다.

셋째, 훈연한 식품(소시지ㆍ칠면조 등)이 요주의 식품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넷째, 소시지나 햄을 프라이팬에 구워 먹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도 벤조피렌이 생기기 때문이다.

다섯째, 같은 제품이라면 열을 가하지 않는 방법으로 만든 식용유에 벤조피렌이 적게 들어있다. 콩기름ㆍ‘엑스트라 버진’(최고급 올리브유) 등에서 벤조피렌이 거의 검출되지 않는 것은 이때문이다. 반면 깨나 들깨를 볶아 식용유를 만들면 벤조피렌이 생긴다. 정제 올리브유인 ‘포마스’와 옥수수기름에서 검출되는 것도 제조시 가열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여섯째, 우리 선조가 고안한 건강 조리법인 삶기ㆍ찌기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다. 삶거나 찐 음식에선 벤조피렌은 물론 아크릴아미드(감자튀김 등 튀김 식품에서 나오는 발암성 물질)도 거의 검출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구이는 동, 수육은 금”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래서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유해물질관리단 박일규 사무관은 “전통 음식인 설렁탕ㆍ삼계탕 등엔 벤조피렌이 거의 없다”고 조언했다.
일곱째, 금연이 중요하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울 때 나오는 벤조피렌의 양은 콩기름을 사용해 5분간 튀김을 했을 때와 거의 같다.

벤조피렌이란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암연구소가 규정한 발암물질. 수십 년간 일정 농도 이상 섭취하면 암(특히 위암)에 걸릴 수 있다. 단기간에 많이 먹으면 적혈구가 파괴돼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신부가 과다 노출되면 태아에게도 안 좋다.

식품을 가열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긴다. 일부 가공식품에도 들어 있다. 지방이 풍부한 식품을 열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생긴다.

담배 연기, 자동차 배기가스, 쓰레기 소각가스 등에 포함된 벤조피렌이 채소 등을 오염시킨다. 고속도로 주변의 콩으로 만든 콩기름이 차량 통행이 적은 곳에서 재배한 콩으로 만든 콩기름보다 벤조피렌 검출량이 2∼3배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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