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잘못 빌려줬다 16억 ‘증여세 폭탄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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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12면

사건 개요
회사설립 발기인 수를 맞추는 데 필요한 이름을 빌려주고 16억원의 증여세 납부 통지를 받음

판결 내용
“조세회피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없는 경우까지 명의신탁을 증여로 간주하는 것은 부당하다”

회사원 A씨는 16억원의 증여세를 내라는 납세고지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세무서에 알아보니 몇 년 전 거액의 주식을 증여받았다는 것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B씨에게서 “새로 설립한 회사의 발기인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선뜻 이름을 빌려준 것이 문제였다. A씨는 증여받은 재산이 한 푼도 없고 세금을 낼 형편도 안 돼 행정소송을 냈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AㆍB씨에게 조세회피 목적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증여세부과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상속세ㆍ증여세법은 권리 이전이나 행사에 등기등록을 요하는 재산의 실제 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경우 조세회피 목적이 없다는 등의 예외 사유가 없는 한 그 재산이 명의수탁자(이름을 빌려준 사람)에게 증여된 것으로 간주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A씨는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해 5년의 법정투쟁 끝에 승소했다. 대법원은 “주식의 명의신탁이 상법상 요구되는 발기인 수의 충족 등을 위한 것으로서, 단지 장래 조세경감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막연한 사정만이 있는 경우 혹은 그 명의신탁에 따라서 간접적으로 사소한 조세경감이 생기는 것에 불과한 경우에는 명의신탁에 ‘조세회피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2004두7733 판결).

보통 세금은 이익ㆍ소득을 얻거나 거래할 때 낸다. 따라서 이처럼 등기등록을 해야 하는 재산에 대해 이름을 빌려줬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에게 재산이 증여된 것으로 법률상 의제(擬制)하여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상식에 반한다. 그러나 자녀 등에게 부동산ㆍ주식의 소유권을 무상으로 이전한 뒤 증여세가 문제되면 납세자가 명의신탁이라고 주장해 과세를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과세당국은 이 같은 일을 막기 위해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을 만들어 명의신탁을 증여로 간주한다. 하지만 실제로 재산을 보유하면서 자기의 필요에 따라 명의를 빌린 명의신탁자도 아니고 단지 이름만 빌려준 명의수탁자에게 거액의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은 세금을 징벌적 제재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욱이 명의신탁 증여의제의 경우 증여재산공제와 재해손실공제 등이 인정되지 않아 실제 주식을 증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된다. 종전에는 증여의제 규정이 부동산ㆍ주식에 적용되었다. 그러나 부동산실명법이 시행된 이후로는 부동산의 명의신탁에 대하여는 형사처벌을 받거나 부동산가액의 5~30% 과징금이 부과되고 있다. 그래서 현재는 주로 주식의 명의신탁에 대해서 10~50%의 증여세를 부과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여러 가지 이유로 주식의 명의신탁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 경우 그로 인해 회피되는 조세가 전혀 없다는 것을 납세자가 전부 입증하는 것은 조세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쉽지 않다. 다행히 최근 대법원은 위와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조세회피 목적’에 관한 납세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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