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더 바싹 다가가 시대 정의의 창이 되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호 02면

‘소년 유격대 장례식에서 어머니들의 절규’, 1943

미국 사진가 필립 퍼키스가 물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질문에 대한 직답은 아니지만 그는 말했다. “사진은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직접 부딪치기 싫어하는 것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영국 소설가이자 비평가이며 사진가인 존 버거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나는 당신에게 예술이 무엇을 하고, 예술을 어떻게 하는지 말할 수 없다. 하나 나는 예술이 과거의 고통을 미래에 보여줌으로써 그런 고통이 결코 잊혀질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나는 또한 권력을 쥔 자들이 무슨 형태의 예술이든 예술을 두려워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예술은 궁극적으로 정의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이와 같은 기능을 할 때, 예술은 지속적인 배짱과 명예가 만나는 장소가 된다.”

‘포토저널리즘의 신화, 로버트 카파’전 # 5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문의: 02-514-3983

‘위대한 전쟁사진가’라 불린 사나이, 로버트 카파(1913~54)(사진 왼쪽)만큼 이 말에 합당한 예술가도 드물 것이다. “당신이 목숨을 걸지 않았기 때문에 리얼한 전쟁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라 말할 만큼 그는 가장 위험한 현장에 바싹 다가가 셔터를 눌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그가 찍은 ‘D-Day’에 라이프지가 붙인 제목은 카파의 사진정신을 집약하고 있다.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Slightly out of focus).”

로버트 카파의 이름을 20세기 포토저널리즘의 맨 앞에 놓게 한 사진은 ‘어느 인민 전선파 병사의 죽음’이다. 1936년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카파는 참호에서 달려나오다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인민 전선파 병사의 죽음을 찍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함께 스페인 내전을 다룬 걸작으로 꼽힌 이 사진이 조작된 것일 수 있다는 의혹이 일었을 때 그는 간단히 답했다.

“스페인에서는 사진을 찍기 위해 속임수를 쓸 필요가 없어요. 사실이야말로 가장 좋은 사진이지요.”

카파는 1947년 20세기 보도사진의 체계를 바꾼 사진 통신사 ‘매그넘’을 창립하고 덜 위험한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그를 부르는 전쟁터를 외면하지 못한 카파는 베트남 전선으로 떠난다. 1954년 5월 25일 인도차이나 전쟁터에서 지뢰를 밟고 쓰러졌을 때, 그는 한 손에 카메라를 꼭 쥔 채 잦아드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사진기의 끈을 놓지 않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