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의 핑크빛 왈츠를 타고 오는 우아한 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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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05면

로비에 들어설 때부터 빈에 와 있는듯한 착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빈 풍물을 담은 사진도 볼 수 있다. 이번 공연의 드레스 코드는 핑크빛이다. 봄에 어울리는 핑크색 의상을 입고 오는 관객에게는 선물도 준다.

지난해 세계 무대 데뷔 20주년을 맞은 조수미. 올해는 그에게 새로운 20년을 시작하는 새 출발의 해다. 그래서 고국에서 첫 무대도 ‘봄의 왈츠’로 골랐다.

“올해는 모두에게 왈츠처럼 우아하고 경쾌하고 활력이 넘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신년음악회라고 하기엔 때늦은 감이 있지만 희망 찬 새해가 되길 기원하는 뜻을 담았습니다.”

조수미가 빈 왈츠를 처음 제대로 접한 것은 1997년. 빈 폭스 오퍼 오케스트라와 함께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서거 100주기 기념 음반 ‘빈에서 온 메아리’(에라토)를 녹음하면서 왈츠의 매력에 푹 빠졌다.

“빈 왈츠의 제 맛을 내려면 본고장 식으로 연주해야죠. 특유의 루바토(특정 음의 길이를 약간 길게 연주하는 것)를 제대로 구사해야 합니다. 둘째 박자를 약간 앞으로 당기는 건데 왈츠 춤을 춰본 사람들만이 할 수 있어요.”

왈츠 음반을 낸 후 콘서트 무대에서 ‘봄의 소리 왈츠’ 같은 곡을 한두 곡 부른 적은 있지만 음악회 전체를 요한 슈트라우스의 빈 왈츠로 꾸민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과 프랑크푸르트 오퍼 오케스트라, 비스바덴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 단원들로 1986년에 창단된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지휘 귄터 그라프)와 호흡을 맞춘다. 독일에서 ‘라이트 클래식 스페셜리스트’로 통하는 악단이다.

조수미씨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 ‘지베링에서의 외출’ ‘빈 숲속의 종달새 폴카’, 오페레타 ‘박쥐’ 중 ‘순진한 시골처녀로 연기한다면’,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 왈츠’, 레하르의 ‘ 윈저가의 유쾌한 미망인’ 중 ‘빌리아의 노래’ 등을 부른다.

독일 출신의 테너 폴커 벵글과 함께 카를 젤러의 오페라 ‘새잡이’ 중 ‘티롤의 장미를 주오’를 2중창으로 부른다. 벵글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집시 남작’ 중 ‘떠도는 정령’에 이어 왈츠 ‘술과 여자와 노래’를 부른다.

또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는 ‘황제 왈츠’ ‘베네치아의 하룻밤 서곡’ ‘휴가 폴카’ ‘경쾌한 기질 폴카’ 등을 연주한다.

“빈 왈츠는 사교춤이긴 하지만 남녀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품위를 지키는 춤이죠. 집에서도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추곤 해요. 왈츠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행복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듣는 사람이나 연주하는 사람 모두의 건강에도 좋아요. 경기 침체 등으로 마음이 무겁고 울적해진 분들에게 음악으로 위로해 드리고 싶습니다.”

비록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며 춤을 출 수는 없지만 관객들은 상상 속에서나마 조수미와 함께 왈츠 춤을 추는 셈이다. 이번 공연을 위해 조씨는 ‘봄의 왈츠’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무대 의상 네 벌을 특별히 새로 준비했다. 앙드레 김이 디자인을 맡았다.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인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나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 왈츠’는 관현악곡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둘 다 원곡은 성악곡이었다.

‘봄의 소리 왈츠’는 1883년 3월 1일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열린 자선음악회에서 빈 궁정 오페라 소속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베르타 슈바르츠가 초연했다. 비앙카 비앙키라는 예명으로 더 유명했던 이 소프라노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요한 슈트라우스가 그의 목소리를 위해 왈츠를 작곡한 것이다. 이 왈츠는 겨울이 유난히 긴 러시아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았으며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그륀펠트가 편곡, 독주회에서 연주해 호평을 받았고 리스트도 이 악보를 구하고 싶어 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봄철에 지저귀는 온갖 새소리를 모방한 선율이어서 탁월한 기교의 소유자가 아니면 연주하기 힘들다. 실제로 에디타 그루베로바, 리타 슈트라이히 등 콜로라투라 대가들만이 이 곡에 도전장을 냈다.

오스트리아 제2의 국가(國歌)로 알려진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 왈츠’는 원래 1867년 2월 9일 빈 남성합창단이 초연한 합창곡이다. 요즘도 빈 소년합창단이 즐겨 부르고 있다. 초연 당시에는 별로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같은 해 요한 슈트라우스가 관현악 버전으로 편곡해 파리 만국박람회 공연에서 선보여 대성공을 거뒀다.

1867년 빈에 새봄이 왔지만 사람들은 전쟁의 폐허와 상처로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1866년 오스트리아는 신생 독일연방의 지휘권을 놓고 프로이센과 싸우다가 이탈리아군의 협공까지 받아 패하고 말았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시끄러운 세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도도하게 흐르는 다뉴브강의 물결을 바라보며 칼 이지돌벡의 시를 떠올렸다.

아름다운 여인이여,
세상의 고통을 견뎌내
기품이 있고 젊음에 넘치는
그대를 만나리
우리들 마음이 의지할 곳
우리들의 빛나는 진실이 있는 곳
다뉴브 강변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 강변
또다시 피어난
달콤하고 향기로운 꽃으로
내 마음의 나무 그늘은 꾸며진다.
불모의 떨기나무에도 꽃이 피어나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 들린다.
다뉴브 강변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 강변

물론 요즘 불리는 노래는 이 시와는 상관없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이 시에서 영감을 받아 선율을 만들었고 가사는 다른 사람이 썼다.

테너 폴커 벵글이 부를 ‘술과 여자와 노래’ 왈츠도 원래 빈 남성합창단이 초연한 합창곡이었다. 술과 여자와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가 있다면 평생 바보로 지내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관현악 편곡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역시 금방 어필하는 데는 성악을 못 따라가죠. 선율의 섬세한 뉘앙스와 호흡을 십분 살려내려면 노래만큼 좋은 게 없어요. 종달새처럼 노래해야 하니 기교적으로는 힘들지만 마음만큼은 가볍고 경쾌해요.”

세기말 빈의 시민들이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듣고 세상 시름을 다 잊었듯 조수미의 노래를 들으면서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다짐해 보면 어떨까.

◇공연메모=4월 18일 오후 7시30분 의정부 예술의전당, 20일 오후 8시, 22일 오후 5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문의: 02-599-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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