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인가, 옛 영광의 부활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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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08면

‘동아(東亞)의 병자에서 21세기 경제패권 국가로.’
유장한 역사의 흐름에서 찰나에 지나지 않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중국은 절대 빈곤에서 절대 강자로 ‘갑작스레’ 변신 중인 나라로 비쳐질 수 있다. 사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엔 늘 ‘빈곤’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이미지 또한 ‘죽의 장막’ 등 폐쇄적인 게 많았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는 중국이 국내총생산(GDP) 측면에서 2조6000억 달러(2006년 기준)로 미국ㆍ일본ㆍ독일에 이어 세계 4위에 오른 현재에도 우리의 의식 한켠에 남아있다. 중국을 가난과 연결지어 온 사람에게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신데렐라의 탄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의 오랜 역사는 다른 사실을 일러준다. 영국 셰필드 대학 불평등연구소(SASI)가 지난해 하반기 발표한 ‘경제력 지도 추이’를 보면, 중국경제의 부상은 결코 ‘어느 날 갑자기’ 식의 신데렐라 탄생은 아니다. 화려했던 옛 영광을 조금씩 조금씩 부활 또는 복원해 나가는 것에 가깝다.
 

19세기 중엽까지 절대 강국으로 존재 … 2015년엔 미국 제치고 중국의 세기로

<기원후 1년> 중국ㆍ인도가 양대 패권국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이행하던 이 시기, SASI가 추정한 세계 1인당 GDP는 445달러다. 이를 바탕으로 지도를 그린 결과 중국이 세계 최대 부국이었고, 인도가 2위로 나타났다. 현재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은 겨우 자취만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빈곤한 지역은 남미였다. 이 지역 1인당 GDP는 당시 평균치에도 못 미치는 400달러였다.
 

<1500년> 중국 패권의 지속

경제력 지도 

서구의 기준으로 ‘지리상의 대발견’ 시대로 불리는 이 시기 세계의 부는 여전히 중국과 인도에 집중돼 있다. 15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세계의 경제력 질서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13세기 원나라를 여행했던 마르코 폴로의 눈에 중국이 ‘황금제국’으로 비쳤던 게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 시기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임진왜란으로 불리는 동북아 국제대전이 발생하기 100년 전쯤인 이 시기 일본의 경제력이 AD 1년보다 상당히 커진 것으로 표현됐다는 것이다.
 

<1900년> 중국의 패권적 지위를 박탈한 산업혁명

184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1860년대 미국과 프랑스, 1870년대 독일 등지로 번지면서 세계의 경제지형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졌고, 서구인에게 ‘잠자는 사자’로 비쳤던 중국은 아편전쟁 등을 거치면서 ‘잠자는 돼지’로까지 조롱받기 시작했다. 1900년 영국과 프랑스, 독일, 미국의 면적은 급격히 팽창했다. 반면 인도와 중국의 면적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한편 메이지 유신을 단행한 일본은 과거보다 더 크게 보인다.

<1960년> 왜소증에 걸린 중국

마오쩌둥이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부르짖으며 벌인 1950년대 말의 대약진 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기아사태가 발생했다. 굶어 죽은 사람만 수천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반면 일본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재기에 성공, 전후 복구 수준을 뛰어넘어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구가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세계의 정치ㆍ경제ㆍ문화의 중심이 됐다. 모든 게 잘나가던 이른바 ‘고-고(Go-Go) 시대’였다.

<1990년> 개혁·개방 초기, 중국은 아직…

중국이 1900년을 전후해 들어갔던 깊은 동면에서 깨어나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중국 경제를 주목한 사람은 일부 전문가 그룹에 불과했다. 새뮤얼 헌팅턴은 93년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에서 중국이 미국을 위협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90년부터 일기 시작한 중국위협론이 서서히 불거지는 시기였다.
 

<2002년>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고

중국의 경상수지가 역사상 처음으로 3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해의 흑자는 무려 350억 달러에 달했다. 세계 경제가 IT 거품 후유증에서 탈출하기 시작하자 중국경제는 다시 한번 두 자리 수 이상 커지기 시작했다. 10년 넘게 꾸준하게 추진해온 개혁개방 정책이 1990년 이후 본격적으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셈이다. 정치ㆍ경제ㆍ역사 전문가가 아닌 세계의 일반 시민들도 이젠 중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주목하기 시작했다.
 

<2015년> 중국, 마침내 경제패권 회복?

미국의 시대가 끝나고 중국의 세기가 시작된다. 셰필드 대학 불평등연구소는 중국이 19세기 중엽 이전의 지위를 회복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골드먼삭스 등 세계적 금융회사들도 이 즈음부터 중국의 세기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2등 국가로 전락한다. 독일과 일본 경제력은 2002년보다 위축된다. 한편, 한국의 경제력은 호주보다 커질 전망이다.

 
역사의 진행에는 늘 ‘그러나’가 있다고 했다. 수많은 전문가가 21세기를 중국의 세기라고 하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그러나’ 경제패권이 바뀌는 시기에는 곧잘 위기(Crisis)가 발생하곤 했다. 이를 딛고 일어선 나라야말로 진정한 글로벌 패자가 됐다. 영국은 1840년대 위기를 딛고 산업혁명에 성공해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경제 패권을 넘겨 받았다. 미국은 1929~33년의 대공황을 극복하고 영국으로부터 패권을 이양받았다. 그런가 하면 일본은 ‘욱일승천 1980년대’ 이후 찾아온 1990년대 초반의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중국의 비상을 지켜보고 있다. 과연 중국이 지금부터 2015년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중국담당 에디터인 제임스 킨지가 지난해 펴낸 책 『중국이 세계를 뒤흔든다』를 통해 예언한 것처럼 중국은 현 글로벌 경제질서를 뒤흔들 수 있을까. 시간만이 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경제력 지도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SASI는 구매력(1990년 달러가치 기준)을 바탕으로 산출한 시대별 국내총생산(GDP)과 역사학자들이 시대별로 추정한 인구를 반영해 1인당 GDP를 산출했다. 이 지도에 등장하는 나라는 현재 존재하며 또 주목받는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가 시대별로 어떤 경제력을 가졌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 까닭에 AD 1년 지중해의 패권 국가이던 로마제국은 당시 상당한 경제력을 자랑했음에도 이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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