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단편 릴레이 편지] 고욤나무의 까치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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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그 날이었다. 이만오천원을 주고 농약을 사왔다. 이년 전 마당에 있는 고욤나무는 병을 앓기 시작했다. 푸르던 잎새들이 누렇게 오그라지며 바삭바삭 말라갔다. 철의 정책, 비스마르크의 건강요법은 나무를 30분씩 껴안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라, 나도 고욤나무를 힘주어 껴안아 온 지 사년이 될 무렵이었다. 이웃에서 농약 분무기 줄을 길게 끌고 왔을 때, 부동산 업자와 땅을 살 사람들이 나타났다.

나는 호스를 땅에 내려놓고 멍하니 고욤나무를 쳐다보았다. 집 주인이 땅을 팔면 나는 고욤나무와 결별을 받아들여야 한다. 바로, 내 그늘을 내줘야만 하는 것이다. "형님, 저 고욤을 따서 항아리에 담아뒀다가 한겨울에 숟가락으로 떠서 먹으면 맛있는데요, 왜 안 따시껴?" "응, 까치들이 먹다가 사람 밥 하나쯤은 남겨주겠지 뭐" 내게 까치밥이란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던 고욤나무!

고욤을 다 따가면서 높은 우듬지에 달랑 고욤 몇 알을 남기고 마치 엄동설한 까치들에게 보시하는 양 까치밥이란 말을 만들어놓은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고욤나무와 사년 넘게 살을 부비며 살아보니 사람들은 까치가 아니라 나무에게 미안해 열매 몇 알을 남겨놓은 것을 알았다. 옛사람들은 그렇게 따뜻한 마음까지 숨기며 살아온 것이다.

함민복<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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