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가망신시킨 「검은 사채」(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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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주부 조모씨(40·서울 강남)는 사채 2억원을 빌렸다가 1년여만에 4억원을 빚지고 15억원짜리 빌라까지 날릴 판이다.
조씨가 악덕 고리대금업자에게 걸려든건 90년 여름. 지방에서 건축업을 하는 남편(45)의 사업이 불황에 허덕이는 것을 보고 「수입이 괜찮다」고 주위에서 권하는 피자 체인점을 운영키로 마음먹은 것까지는 좋았다.
남편 몰래 체인점 개설 계약을 마친뒤 개업자금 2억원을 꿔주기로 했던 친지가 갑자기 자금사정악화로 약속을 못지키게 됐다. 속절없이 임대료만 물게된 조씨에게 「월1부,즉시 대출가능」이라는 일간지의 사채업자 광고가 눈에 띄었다. 『몇달뒤 갚으면 되겠지…』라 생각하고 찾아간 곳이 「대풍」이란 신사동의 조그만 사채사무실.
『형식적으로만 대출기한을 3개월로 하고 몇달이고 이자만 내고 쓰라』는 그들의 꾐에 속아 15억원짜리 빌라를 담보로 자금을 대출받았다.
그럭저럭 장사를 해가며 여기저시서 끌어모은 2억원을 가지고 5개월뒤 「대풍」을 찾아갔으나 사무실도,업자도 온데간데 없었다.
돈을 못갚고 돌아온 조씨에게 한달뒤 마수가 뻗쳐들기 시작했다.
『사장이 바뀌어 사정이 달라졌다. 빨리 돈을 안갚으면 강제집행한다』는 협박.
조씨가 돈을 제때 못갚도록 부근 다른 곳에 사무실을 옮기고 간판도 「풍정」「신한실업」이라고 계속 바꿔온 그들은 『새로 3억원을 대출해줄테니 빚을 갚으라』는 흥정을 해왔다.
마지못해 응한 조씨에게 이들은 원금·선이자·알선료·수수료를 떼고 5천여만원만 지급했다. 7개월뒤인 지난해 9월 똑같은 방법으로 대출금을 4억원으로 올리면서 같은 명목으로 3백73만원만 남기고 무려 3억9천6백여만원을 떼어갔다.
조씨가 원금을 못갚자 이들은 지난달 집달리를 동원,대리점의 집기·시설 등을 강제 차압한뒤 항의하러 찾아간 조씨를 집단구타까지 했다.
『4억원을 더 줄테니 아예 빌라를 넘기라』고 협박해온 이들 김연호씨(45) 등 3명은 견디다 못한 조씨의 신고로 17일 경찰에 구속됐다. 그러나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은 상환기한을 넘긴채 그대로 남았다.
『욕심이 문젭니다. 조씨같은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예요. 한번 걸려들면 전재산 날리고 패가망신하죠.』 조사 담당형사의 한탄이었다.<조석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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