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장직 물러난 이경성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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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4년 전부터 여러 차례 물러날 뜻을 밝혀왔는데 이번에야 비로소 받아들여지게 된 것 같습니다. 건강도 좋지 못한데다 후배들에게도 길을 열어 줘야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10년 가까이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맡아온 「미술계의 대부」 이경성씨(73)가 최근 후임관장으로 임영방씨(63·서울대교수·미술평론가)가 내정됨에 따라 곧 물러나게 됐다.
이 관장은 『최병렬 전 문공부장관 시절부터 사표를 써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밝히면서 『사의를 밝힐 때마다 조금만 더 일해달라는 부탁을 물리치지 못해 결국 너무 오래 머무른 결과가 됐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지난 81년8월 국립현대미술관의 덕수궁시절에 취임, 83∼85년 고 김세중 관장 때를 빼놓고는 줄곧 관장으로 일해왔다.
『무엇보다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미술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국제적 진출의 발판을 마련한 것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관장은 올림픽을 전후한 각종미술행사로 한국의 현대미술 발전이 50년쯤은 앞당겨진 셈이라고 보았다.
세계적인 작가·평론가들과 직접 교류하고 작품을 기증방아 올림픽조각공원 등을 마련한 것 등은 한국미술사상 매우 획기적 일이었다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발전하기 위해서는 관장의 직급을 국립박물관처럼 1급으로 끌어올리고 전문직원(학예연구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이 관장은 예산을 대폭 늘리는 것이 어려운 현실에서 직원의 승격·전문화를 통해 미술관 기능을 능률적으로 살려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장은 이 같은 신념 때문에 이번 후임관장의 추천과정에서도 공무원·작가는 배제해야된다고 충언했다고 밝혔다. 공무원은 비전문가며 작가는 일정한 이해관계와 경향성을 갖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관장은 일본와세다(조도전)대 법학과를 나왔으나 다시 미술사·미학을 전공, 해방 후 우리현대미술의 태동기 때부터 40여년 동안 미술평론가로 활약해온 「한국현대미술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관장을 그만 두더라도 앞으로 미술계에서 할 일이 많습니다. 그 동안 마음껏 하지 못했던 평론활동이나 미술재단 일에 더욱 매달릴 작정입니다.』 <이창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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