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에세이] 중국 성화 봉송로에 숨은 '영토 공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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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국중앙방송(CCTV)의 화면은 26일 저녁 온통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다.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 성화 봉송로 발표 행사를 화려하게 생중계한 것이다.

21세기가 중국의 세기가 되길 염원하며 만든 중화세기단(中華世紀壇)에 운집한 수천 명의 중국인은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성화가 거쳐 갈 국내외 135개 도시를 발표할 때 환호성을 질렀다. 발표를 보면서 올림픽 사상 최장이라는 13만7000㎞의 봉송로를 짜기 위해 중국 측이 얼마나 많은 고심을 했을지 짐작이 갔다. 중국 정부의 심모원려(深謀遠慮)를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은 호찌민~타이베이~홍콩 구간이었다. 그동안 중국과 대만은 물밑에서 이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해왔다.

중국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모습을 피하기 위해 대만은 "성화가 제3국을 거쳐 대만에 들어오고 나가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해 왔다. 결국엔 성화가 베트남을 통해 대만에 들어간 뒤 중국의 특별행정구로서 자치권을 누리는 홍콩을 통해 나오는 절충안이 중국 측에서 나왔다. 대만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결과적으로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선전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런 속셈은 곧바로 들키고 말았다. 대만올림픽위원회는 즉각 "대만을 중국의 국내로 간주해 (자주 국가로서의) 지위를 격하시킨 노선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중국 내 루트를 봐도 영토에 대한 중국의 강한 통합 의지가 드러난다. 지도를 놓고 보면 봉송로는 중국의 국경선을 따라가도록 정교하게 배치됐다. 분리 독립을 주장해온 티베트와 신장(新疆) 자치구가 포함된 것은 물론이다. 특히 세계 최고봉의 위치를 놓고 이견을 보여온 에베레스트(중국명 주무랑마)를 넘도록 설계해 중국은 네팔에 일격을 가했다.

베이징올림픽조직위가 북한의 평양을 집어넣은 것은 일종의 깜짝쇼였다. 성화가 서울~평양을 관통하게 함으로써 평화로운 올림픽 환경을 조성하는 데 협조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북한에 던진 셈이다. 중국은 1990년 베이징 여름 아시안게임 때는 티베트를, 1월 창춘(長春) 겨울 아시안게임 때는 백두산(중국명 창바이산)을 자국 영토라고 요란하게 선전했었다. 스포츠 행사인 올림픽을 치르면서 중국 측이 너무 많은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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