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텍 참사 이후...'바짝 자녀 곁으로' 아버지들이 바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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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족에게 어떤 존재인가'.

아버지가 변하고 있다.

앞으로만 내달리던 현실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뒤를 돌아보고 있다. 그곳엔 가족이 있다.

지난 주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에 이어 한인부부 살해-자살 사건이 잇따르면서 요즘 아버지들의 가족애가 각별하다.

특히 두 사건 모두 이민가정의 특수성이 내포돼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피부에 와닿는다는 것이 대다수 아버지들의 심정이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될 수 있으면'에서 '될 수 있는대로' 가족과 함께 보내려는 한인 아버지들이 늘고 있다.

아버지들의 의미있는 변화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고성진(39)씨는 요즘 9살난 아들에게 컴퓨터 게임을 배우고 있다. 고씨는 "사실 이전엔 애가 게임하는 것을 보면 '그만하라'고 잔소리만 했는데 이젠 둘이 같이 한다"며 "게임을 하면서 '아빠와 나는 친구이며 하나'라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씨는 "특히 스포츠 게임은 인생 경쟁의 축소판으로 때론 이기고 때론 진다"며 "아이가 져서 시무룩할 때 '남자는 패배(fail)했을 때 무언가를 배운다'는 말했더니 어린 애지만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골프를 미루는 아버지도 적지않다.

이현식(43)씨는 직장동료나 거래처와 거의 매주 치다시피한 골프를 지난 주말엔 접었다. 대신 12살.7살 난 자녀와 괜찮은 영화 두편을 즐겼다.

"70년대 영화인 '챔프'와 아카데미 작품상을 탔던 '아마데우스'를 빌려 봤어요. 피자에 과일 먹으면서 이런저런 수다떨면서 영화를 보는 맛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씨에 따르면 두 영화에는 눈물과 용기 도전 가족사랑 감동이 녹아있어 특별히 '지루한 교훈'을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심인제(47)씨의 경우 10학년인 아들과 함께 동네 헬스클럽 회원권을 구입했다. "평소 애가 '몸짱'에 열광했는데 올해는 내가 트레이너가 돼서 '땀 흘리는 부자'가 될 생각입니다."

지난 주말 가족과 온천을 다녀왔다는 윤영태(40)씨는 "몇차례 간 곳이지만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뒤여서인지 완전히 다른 기분이었다"며 "바비큐를 하며 수영을 하며 환하게 웃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고 가족의 소중함을 뼛속 깊이 느꼈고 내 자신을 성찰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아버지들의 변화와 관련 가정상담 및 심리학자들은 "아버지에게 이제 가정은 일을 마치고 그저 휴식을 취하는 쉼터가 아니다. 오히려 꾸준히 노력해서 쌓아올려야 하는 가족사랑의 성이며 그 성안에서 가족은 안전하고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버지가 달라지면 세상이 변한다'는 말을 실천하려는 한인 가장들의 노력이 빛나는 때다.

[미주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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