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LA 한인의「단결」보여줄 때"-「라디오코리아」사장 이장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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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9일 오후 대한항공편으로 흑인 폭동지 미국LA에서 일시 귀국한 LA 라디오코리아 사장 이장희씨(45)는 김포공항에서『현재 LA교포들은 모두 망연자실한 상태』라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폭도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동포들의 통곡, 이젠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고 한탄하는 긴 한숨소리가 잿더미만 무수한 보금자리에 찡하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70년대 통기타 그룹의 주요멤버로서『한잔의 술』 『그건 너』등으로 인기를 누렸던 가수출신 이사장은 졸지에 생계 터전을 잃고 알거지가 된 한인교포들에게는 잃은 것은 돈더미요, 얻은 것은 빚더미와 잿더미뿐이라고 했다.
81년 도미, LA에 정착한 뒤 89년1월 이번 흑인폭동사건 당시 「교포재난 상황실」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LA라디오코리아를 설립한 이사장은 이날 현지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공보처 초청으로 1년6개월만에 귀국했다.
이사장은 당시 정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고 했다. 그가 흑인들의 폭동사건을 예견한 것은 사태발발 20분전인 현지시간 지난달 29일 오후4시40분쯤.
관심의 초점이 됐던 로드니 킹 사건의 폭행경찰에 대한 법원의 무죄 평결이 나오자 이사장은 순간적으로「심상치 않다」고 느끼고 곧 보도 본부장에게『변호사 2명과 일반시민 2명등 교민들의 반응을 보도하라』고 지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흑인들의 분노는 시위로 나타났고 급기야는 약탈·폭행·방화로 번졌다.
이사장은 즉각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24시간 특별생방송으로 대치했다. 7명의 취재기자를 포함한 57명의 전 사원들도 비상 근무체제에 들어갔다.
『지금 우리 슈퍼마킷이 흑인들에게 약탈당하고 있습니다. 빨리 좀 도와주세요』등 수많은 교포들의 구조요청 전화가 그대로 전파를 타고 생중계 되면 이 방송을 들은 한인청년들이 그 곳으로 달려가 보호하는 식으로·교포들간의 생존노력이 처절하게 전개됐다.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교민들의 허탈감을 대변하며 이사장은『보상을 원하지 융자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먹을 것도, 잘 곳도, 희망도 없다』는 교민들의 절규를 전했다.
하지만 고국과 현지 각계각층에서 1백만 달러가 답지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다고 했다.
이사장은『수많은 재산피해를 냈지만 한가지 얻은 큰 교훈이 있다면 바로 교민들의 단결일 것』이라며 『한인들의 단결이야말로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정선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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