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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생포] 농가 구덩이 파자 털북숭이 "내가 사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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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라크를 24년간 철권통치한 독재자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지하 구덩이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생포됐다. 그는 예상대로 고향 티크리트 인근에 숨어 있었다.

13일 오후 8시30분(현지시간). 이라크 주둔 미 육군 제4보병단 소속 특수부대와 쿠르드 특수부대원 6백여명은 티크리트에서 남쪽으로 15km 떨어진 아드 다와르의 한 농가 채소 창고를 포위했다. 작전명은 '붉은 새벽'. 선발대의 신호를 받은 병사들은 엄호를 받으며 일제히 출입구를 부수고 안으로 돌진했다. 이미 한 군데를 급습했지만 허탕을 친 뒤여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안은 또 텅 비어 있었지만 대원들은 곧바로 제보지점 주변을 파기 시작했다. 입구는 벽돌과 잡쓰레기로 교묘하게 가려져 있었다. 한 2m쯤 파들어가자 직사각형의 좁은 지하 은신처가 나타났다. 조그마한 환풍기도 갖춘 구덩이는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의 넓이. 그러나 놀랍게도 흰 수염을 기른 남성과 함께 모두 세명이 웅크린 자세로 필사적으로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도구라곤 작은 삽 하나. 모두들 겁을 먹은 듯 몸을 사렸다. 대원들은 이들 중 가장 몸을 웅크리는 사람을 붙잡았다. 까치집 같은 머리에 수염이 희끗희끗한 이 남성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대원들을 돌아봤지만 저항하거나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후세인이냐"는 미군의 질문에 그는 "내가 사담"이라고 짧게 대답한 뒤 고개를 떨궜다.

미군은 후세인과 함께 있던 남성 두명을 포박하고 후세인에 대한 신원 확인절차에 들어갔다. 작전에 동원된 후세인 정권의 한 측근 세력이 현장에서 후세인을 확인했다. 후세인은 체념한 듯 미군의 질문에 협조적으로 대답했다.

후세인을 밖으로 끌고나온 미군은 다시 DNA검사를 위한 세포를 채취한 뒤 헬기에 태워 바그다드로 압송했다. 그는 보호시설에 감금됐다. 사담 후세인이 8개월간의 도피생활을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체포 과정에서 교전은 없었고 부상자도 없었다. 후세인은 간단한 신체검사 결과 건강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이뤄진 후세인 체포는 미군 특수부대와 쿠르드 반군의 합작으로 이뤄졌다. 쿠르드애국연맹(PUK)의 고위 관리는 14일 "쿠스라트 라술 알리가 이끄는 PUK군이 정보를 제공하고 미군이 후세인의 은신처를 좁혀가며 후세인을 극적으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PUK는 지난 8월 말 그간 후세인의 도주를 전적으로 도왔던 타하 야신 라마단 전 부통령을 이라크 북부 모술에서 체포한 조직. 후세인 정권 붕괴 후 체포될 때까지 후세인의 도주로를 확보하고 '임시지도부'를 운영해온 라마단은 생포 직후 미군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

곧 미군의 후세인 체포작전이 본격화됐다. 미군은 라마단의 정보와 PUK 및 이라크 정보원들의 첩보를 토대로 후세인의 고향 티크리트를 중심으로 정밀 수색작전을 펼쳤다. 지난달엔 후세인을 체포하기 위한 특수부대를 창설했고, 이들은 가동 1개월 만에 이라크전 '지명수배 1호'인 후세인을 생포하는 개가를 이뤘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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