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모』임신은 자연질서 배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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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리모임신을 포함, 전통적인 가족개념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있는 인공출산이 「일반화」되고 있다. 대리모임신의 경우 지난 89년 국내 최초의 출산사례가 보고된 이래 알게 모르게 1백 건 이상 시도 됐다는 것이 학계의 추산이다. 본격적인 윤리적 논의를 하지도 않았고 법적 테두리 설정도 없는 상태에서 계속되는 「인공출산의 윤리와 의학·법적 문제」를 대리모임신을 중심으로 고정명 국민대법대학장(인공수정법리 전문가)의 도움말로 점검해본다.
◇윤리적 문제-인공출산 문제의 당사자로 중앙일보사에 제보해온 다음 두 여성의 얘기는 대리모임신 등의 윤리와 관련, 무엇이 문제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남2녀를 둔 주부 최정애씨(가명·경기도 부천시)는 남편이 자신 몰래 손위 동서에게 정자를 줬다는 사실을 최근 늦게 알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털어놓은바 있다(중앙일보4월21일자 23면 보도). 태어날 아기와 자신·남편·시아주버니·자신의 자녀들과의 관계를 상상해보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 돼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최씨는 나아가『사랑은 개입되지 않았지만 동서가 남편의 씨를 배고 있다는 사실도 참을 수 없다』고 분을 감추지 않았다.
반면 주부 이성숙씨(가명·경기도 안양시)는 『남편과 상의해 아이가 없는 형님(동서)댁에 정자를 주려 했는데 최씨의 사례가 보도되면서 정자를 주는 일이 무슨 죄를 짓는 분위기가 집안에 형성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씨는 『최씨의 경우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 든다.』면서 『집안에 양자를 들이는 것보다는 형제간에 불임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들 두 주부의 의견은 각각 수긍할만한 내용이 있으나 국내에는 아직 대리모 임신 등에 대한 논의가 없어 어떤 방향으로 결론을 이끌어내기가 힘든 실정이다.
외국의 경우 우리보다 앞서 인공수정을 실시해온 국가에서는 최소한 종교적 차원에서는 대리모임신을 포함, 모든 형태의 인공수정을 거부하는 양상이다. 예컨대 로마교황청은 지난 87년의 한 훈령에서 『인공수정은 신의 법, 혹은 신의 의지와 어긋나는 것으로 부부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만 서로 배우자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있다. 카톨릭교회 외에 유대교 도 비슷한 입장에서 인공수정을 반대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카톨릭중앙의료원이 지난해 가을 「의학 윤리지침」을 마련하여 『교회의료기관에서는 배우자간 또는 비 배우자간의 체내·체외 인공수정 시술을 절대로 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이 규정은 특히 부부간에도 인공출산을 명문으로 금하는 등 대단히 엄격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인공수정을 바라보는 종교계의 입장이 절대적으로 인공출산을 반대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 62년 미국장로교회는 『인공수정은 간통이 아니며 인공수정으로 인한 출생자의 보호를 위해 인공수정은 엄격히 규제돼야 한다』며 부분적으로 인공수정을 허용하는 견해를 보이고있다.
유교권인 우리나라에서는 인공출산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유교권 국가인 일본의 경우 난자공여·대리모 등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의 불임부부중상당수가 미국인 대리모 등을 이용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법적 문제=대리모임신등을 통해 아이가 출산했을 경우 윤리적·감정적 차원문제 못지 않게 심각한 것이 친권·재산권 등과 관련한 법적 문제다.
외국의 경우 대리출산 후 대리모가 친권을 포기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이혼 때 자신의 정자 혹은 난자를 제공하지 않은 측에서는 부양을 포기하는 사례도 있는 등 대단히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지난 83년 무정자증으로 다른 남자의 정자를 받아 임신한 아내와 이혼한 김 모씨가『출처도 모르는 인공수정에 의해 얻은 아이를 아들로 인정할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 법정으로까지 비화된 유일한 예다. 당시 재판부는『인공수정 아도 친생자로 추정된다』고 판시, 김씨가 패소했다.
◇의학적으로 본 인공출산-사람은 정자와 난자·자궁을 기준으로 할 때 누가 이들 요소를 제공했느냐에 따라 16가지의 출산형태가 있다. 이중에는 친모가 난자와 자궁을 제공하고 친부가 정자를 제공하는 정상적인 형태도 포함돼 있다. 윤리문제와 관련, 특히 관심을 끄는 대리모임신은 자궁만을 대여하는 형식과 자궁과 난자를 동시에 제공하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대리모임신이 국내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는 자궁을 빌려주는 사람이 불임여성의 친정어머니나 자매 혹은 동서 등으로 친인척간이 많다는 점 때문이다.
자궁만 빌려주는 대리모임신은 불임여성의 자궁이 기형 혹은 질환 등으로 수정란의 착상이 불가능할 때 시도한다.
자궁과 난자를 모두 빌려주는 것은 「씨받이」와 같은 형태지만 씨받이가 남녀간의 접촉에 의해 출산을 유도한다면 대리모 임신은 남성의 정자를 인공적으로 배우자가 아닌 여성에게 옮긴다는 점이 다르다.
인공수정 중 남편 쪽에 불임의 원인이 있을 때는 정자은행 등이 있어 사실상 모르는 남자의 정액을 받는 것이 가능하지만 대리모는 10개월 여간 아이를 배고 있어야하기 때문에 프라이버시보장에서 취약하다. 이는 의학적으로 정자는 냉동상태에서 수주일 이상 보관이 가능하지만 난자는 보관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정란은 난자보다 오랜 기간 보존될 수 있다.
최근 의학기술이 크게 발달돼 상상 밖의 각종 임신형태를 내놓아 사회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더 발달된 의술로 스스로 만든 문제를 줄여가면서 또 새로운 형태의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남성불임 중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정자의 활동력이 미약한 것이다. 이들 정자는 난자의 표면 통과가 불가능해 수정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최근 침으로 정자를 한 개만 집어내 난자에 곧바로 찔러주는 시술이 동남아 등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 이런 종류의 불임은 해결될 전망이다. 앞의 두 여인 예에서 불임원인이 정자활동의 무력으로 판단된다면 이런 시술의 적용이 가능,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의술의 개발은 또 다른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즉 의사가 특정 정자를 선택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인륜에 반하는 행위며 이런 기술이 우생학적으로 이용될 때 인간이 인간을 선택하는, 다시 말해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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