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지하경제 “불법합작” 충격/TC밀반출 어떻게 이뤄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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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실적에 급급 마구 판매… 웃돈 붙여 암달러상에/암달러상은 밀수꾼·재산도피자에 팔아 차익/수사시작되자 은행판매 크게 줄어
검찰이 9개월에 걸친 끈질긴 수사끝에 전모를 밝힌 여행자수표불법밀반출 사건은 국내 최대 규모 경제조직범죄 적발이다. 수사를 통해 외환관리의 허점과 지하경제의 복잡한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현재 홍콩에서 대부분 수입되는 미화현금은 수송·보관료 때문에 판매이익이 거의 보장되지 않는다.
반면 국내은행의 여행자 수표 위탁판매 수수료는 판매액의 0.57%인 달러당 3∼4원.
이때문에 이번에 관련된 7개 시중은행은 지점별로 한달에 1백50만∼3백만달러의 무리한 목표액을 할당했고 담당직원들은 실적을 채우는데 급급한 나머지 판매규정은 애초부터 안중에 없었고 심지어 불법매매조직을 찾아다니며 인사치레하는 어이없는 작태를 보였다.
또 TC발행회사의 하나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X) 서울지사의 일부 판촉직원들은 판매실적을 높이기 위해 불법매매 전문조직원을 은행직원들에게 소개시키는등 이같은 변칙거래를 부채질했다.
검찰은 국내에서 거래되는 5종의 여행자수표중 문제가 된것은 미국 아멕스·시티 콥·토머스 쿡등 3종이며 외환은행 비자는 판매규정이 철저히 지켜졌고 뱅크 오브 아메리카은행의 여행자 수표는 거래가 미미해 수사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88올림픽을 계기로 해외여행객이 늘면서 외환수요가 폭주하자 경제범죄조직들이 여행자수표유통의 이같은 허점을 노려 외화유출 수단으로 집중 공략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적발된 조직중 최대 규모인 토탈코포레이션 조직은 해외여행알선업체로 위장,2년여동안 1억2천5백만달러(한화 9백37억원상당)의 여행자수표를 사들여 달러당 5원씩의 이윤을 남기고 암달러상 등에 되팔아 6억여원의 부당이익을 챙겼다.
D항공사 전 영업부장 최재성씨(40·수배중)는 재직중 6백38만달러(한화 47억8천만원)를 불법매입,역시 암달러상과 거래해오다 지난해 8월 검찰수사가 시작되자 9월 여행자수표 66만달러를 가지고 미국으로 도피하기도 했다.
여연숙(57·여)·박세규(46·이상 수배중)씨등 이들과 거래한 암달러상들은 다시 홍콩 등을 상대로 한 금괴·한약재밀수업자,호화해외여행자,재산도피자 등과 거래하면서 연간 4백억원 상당씩의 실적을 올렸다.
이과정에서 여씨 등은 당초의 생계 수단형에서 「기업형 암달러상」으로 변신했고 빌딩까지 소유하게 됐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포공항을 통해 여행자수표를 밀반출하려다 적발된 경우는 90년 68건 1백85만달러,지난해엔 1백13건 1백93만달러로 이번에 적발된 총금액의 2%선에 머무르고 있어 별도의 대책이 강구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목표액을 최고 1백50%까지 초과달성하던 각 은행지점들의 판매실적이 지난해 8월 수사착수이후 10∼20%로 격감했고 이에 따라 암달러 시장도 크게 위축됐다고 밝혔다.
또 국내 소요량의 70% 정도가 밀수품인 금의 경우 검찰수사로 밀수대금 지급 수단인 여행자수표의 공급이 차단되자 시중도매시세가 돈쭝당 3천원 정도나 올랐고 금은상들의 이직현상까지 나타났다는 것이다.
검찰은 여행자수표가 불법외화유출의 수단이 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관련은행들의 판매규정준수 여부를 상시 감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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