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경기 회복 불투명|금리 내려도 계속 침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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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 등 선진국들이 금리인하를 통해 경기회복을 꾀하고 있으나 그 효과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선진국 경기에 목을 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나라의 수출산업도 자연히 초조해 하고 있다. 영국의 권위 있는 경제전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4월17일자)도『90년 말 이래 미국·일본·영국이 금리를 3∼4%포인트 낮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나라의 민간소비·투자활동은 별로 늘어나지 않고 있으며 경제는 전반적인 침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금리인하는 대표적 경기부양책으로 꼽힌다. 금리가 낮아지면 돈을 쓰겠다는 기업· 개인들이 늘어나 경기를 활성화하는 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등 선진국에서 최근 이 같은 일반론이 잘 먹혀들지 않는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선 꼽히는 것이 싼 금리로 돈을 빌려준다 해도 쓸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업은 물론 일반가계도 빚이 늘어나 새로 돈을 꿔 슬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다 각국 은행감독 당국이 은행에 대한 자기자본규제를 강화하면서 은행들이 자금운용을 매우 보수적으로 하고 있는 요인도 가세하고있다. 부실대출을 엄격히 규제하자 쉽게 대출을 못한다는 얘기다.
그 밖의 요인으로는 주식·부동산 값 하락으로 은행들이 사실상의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대출여력이 뚝 떨어진 점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주로 일본을 두고 하는 말이다.
린던 소재 증권사인 제임스케이플사는 이 같은 여러 가지 원인 중 첫 번 째로 지적된 기업·가계의 빚이 쌓인 점을 특히 우려하고 있다. 경기회복을 꾀하려면 어차피 민간경제 주체인이 들이 활동적으로 움직여야하는데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계가 더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가계들은 80년대 초반부터 소비지출 등을 위해 자금차입을 늘려 왔으나 소득증가세가 여기에 미치지 못해 부채가 계속 늘어 지금은 가처분소득보다 빚이 많아졌다는 것이 관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따라서 경제활동의 약 3분의2를 국민들의 소비지출이 좌우하고 있는 미국의 경기사정이 별로 호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의 경제지표로 보면 낙관· 비관이 교차해 자신있는 전망을 내리기 어렵게 돼있다. 실제로 미국의 소매 판매액은 올 1, 2월 전달보다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으나 3월엔 다시 0,4% 줄어들었다. 미국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를 나타내는 소비자 신뢰지수는 지난 2월 46,3%로 74년12월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으나 3월엔 54%로 높아졌다. 산업 생산 면에서는 긍정적 신호가 없는 것은 아니나 멈추는 듯했던 실업률이 지난 2월 7,3%로 전달보다 다시 0,2%포인트 올라갔다.
일본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부동산·증권 등에 일었던「거품」이 꺼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의 버블(거품)경제는 85∼90년 증시 활황· 부동산 열풍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일본기업들은 증시에서 약8천억 달러를 조달했으며 이 같은 돈이 부동산시장으로 몰리면서 이른바 재테크열기가 열도에 가득했던 것이다.
이 같은 열기를 방치했다간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을 우려한 일본정부는 90년4월 금융긴축정책을 들고 나왔으며 이때부터 거품이 꺼지는 부작용이 여기 저기서 표면화되고 있는 중이다.
일본은행들이 작년 말 현재 안고있는 부동산관련 부실대출이 4천5백40억 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부동산 경기에 편승한 방만한 자금 운용이 스스로 발목을 잡는 화근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 같은 거품을 제거하는 대로 다시 안정적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영국 역시 미국경기의 더딘 회복세와 자체적으로 안고있는 몇 가지 문제가 얽혀 낙관론의 확산을 막고 있다. 대처 전 총리로부터 고 물가를 인계받은 현 메이저내각은 물가를 잡는데는 상당한 진전(90년 11%에 달했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작년엔 4%로 둔화) 을 보았으나 아직도 영국 경제는 불황의 터널을 빠져 나왔다고 할만한 뚜렷한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단지지난해 경제가 워낙 안 좋아(성장률 마이너스 2.5%) 올해 상대적으로 회복세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 금리인하 효과가 뚜렷이 나타나지는 않으나 적어도 고금리 때보다 기업활동을 북돋운다는 점, 미국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어떤 식으로든 경기부양책을 쓸것으로 보여 선진국 경제를 굳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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