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 연구기관 간섭심해 연구"소화불량"|과기처"자율확대"말뿐…규제 오히려 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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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의견인 차로서 큰 역할을 다해온 정부출연연구소가 정부의 지나친 간섭과 규제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데다 일부 출연연구기관에서는 기관장의 경영능력을 성토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이에 대한 근본대책과 수술이 절실히 요망되고 있다.
서울 홍릉 연구단지나 대덕 연구단지, 창원연구단지 할 것 없이 모든 연구기관의 연구원들은 물론 행정담당자들도 도대체 과기처가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G-7프로젝트(과학기술 선진7개국 진입계획)의 달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과기처는 출연연구기관 평가 후속조치의 하나로 인사·회계·급여 등 11개 규정·준칙·지침을 폐지해 기관운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확보한다고 했으나 실제는 오히려 규제가 강화됐다는 것이다.
한 예로 정부가 준예산(운영비)의 실행예산은 소장의 재량에 따라 자율적으로 편성하도록 돼 있는데도 올해부터는 이사회의 승인을 받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사회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인 과기처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며 이 과정에서 과기처가 자기들의 취향에 맞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정원과 예산동결로 인해 연구업무가 큰 혼란을 겪고 있는 것도 문제로 특히 지난해평가에서 하위그룹에 속했던 기관일수록 연구비와 운영비집행이 제대로 안돼 연구가 중단되거나 축소되고있어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해사기술 연의 선박설계 생산 전산시스팀( CSDP)기술개발의 경우 정부의 첨단기술연구개발사업의 하나로 선정돼 사업단까지 만들어 90년부터 추진해왔는데 지난해 9월 이후 예산편성이 안돼 7개월 째 연구가 중단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젊은 박사급 연구원들이 속속 연구소를 떠나고 있다. 올 들어 화학·원자력·표준·기계 연·과기 연 등 대부분의 연구소에서 이직자가 늘어 전체적으로 1백50명 정도 의 박사들이 이미 대학이나 기업체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특히 화학 연의 경우 금년 중 대거 이탈이 예상되고 있다.
이들에게 충분히 연구할 수 있는 안정된 분위기와 사기 진작, 그리고 적절한 비전을 제시 못하는 한 이 같은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여진다.
출연연구소의 한 고위인사는『연구소들이 본래의 업무기능에 걸맞은 조직이나 운영관리제도의 틀을 갖추지 못한 채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조직개편과 업무기능의 꿰맞추기에 영일이 없는 가운데 연구원들이 소속감이나 안정감을 상실, 연구의욕의 저하로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은 청와대 주변의 과학기술, 특히 출연연구기관에 대한 좋지 못한 시각 때문이라는 의견이 더 지배적이다. 기계·화학·표준연등에서 발생한 연구비의 전용, 기관장의 근무이탈 등 좋지 못한 일들이 감사에서 터져 나왔고 일부 유치과학자에 대한 질의 문제까지 겹쳐 청와대측이 강한 불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연구기관장들이 연구비에서 비자금을 마련, 선거비용을 지원하는 등 자리 지키기에 이용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과기처는 관료화·경직화에서 일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며 연구기관장들도 책임경영의 측면에서 생산성 있는 연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심기일전해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신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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