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체조-"남북 손잡으면 세계 2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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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CIS (독립국가연합)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체조에서 남자부에 관한 한 남북한이 단일 팀을 이룰 경우 CIS에 버금가는 세계 정상급의 강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내려져 관심을 모으고있다. 여자 탁구는 이미 지난해 단일 팀으로 세계를 제패한바있어 더욱 흥미로운 것이다.
남북한 남자 팀은 90년 초까지만 해도 양쪽 모두 세계 15위권을 맴돌던 중위 정도의 팀들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인디애나폴리스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이 사상 첫 6위를 차지하면서 자력으로 바르셀로나 올림픽 티켓을 거머쥔 데 이어 북한 (91 세계 선수권 14위) 도 이번 파리 개인 선수권 대회 (15∼19일)에서는 슈퍼스타 배길수가 사상 첫 금메달 (안마) 을 따내는 장족의 발전을 이룩한 것.
이번에 안마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배길수는 올해 만21세로 평양시 클럽 소속.
11세 때인 지난 81년 체조에 입문한 뒤 89년에 대표 선수로 발탁됐으나 그동안 국제 대회에서 뚜렷한 성적을 올리지 못한 채 2류 선수로 치부돼 왔었다.
그러나 배길수는 이번 파리 대회에서 괄목할 테크닉과 파워로 안마 종목의 예선·준결승을 연속 1위로 통과한데 이어 결승에서 당당치 우승, 3개월 앞으로 다가온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게 됐다.
특히 배길수는 지명도에서 뒤져 중국의 리징, CIS의 세르보 등과 공동 1위를 나눠가졌을 뿐 연기의 정확도와 힘·기량에서는 이들을 압도했다는게 대회를 지켜본 김상국 대한 체조협회 부회장의 설명. 따라서 배길수의 단독 우승으로 점수를 매기는 게 타당했다는 것이 지배적 분위기였다.
남자체조는 마루·안마·철봉·평행봉·뜀틀·링 등 6개 종목. 이번 파리 대회에서 CIS는 세르보·미수틴·코로브친스키·보로파예프 등 4명의 선수가 5개 종목을 석권 (공동 1위 포함), 변함 없는 세계 최강으로서의 위세를 떨쳤고 나머지 종목에서는 한국 (유옥렬 뜀틀)·북한 (배길수 안마)이 금 1개씩을, 중국 (리징 평행봉·안마) 이 금메달 2개를 가져갔다.
지난해 세계 선수권 대회 단체전을 기준으로 할 때 세계 랭킹은 CIS·중국·독일·일본·미국·한국 순. 그러나 미국은 주최국으로서의 이점을 안고 5위에 진입했을 뿐 실제 실력으로 6위는 어렵다는 지적. 이번 대회에서 단 1명도 메달 권에 들지 못한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또 2위권인 중국도 리징이라는 대 선수 혼자 금 2 (평행봉·안마) 은1 (철봉)개를 가져갔을 뿐 다른 선수들은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중국은 리징 외에 이춘양·구오린야오·리셔셩이 파이널에 올랐으나 기량 면이나 연령상 더 이상 메달 감은 못된다는 평가. 따라서 이번 금메달리스트인 남북한의 유옥렬과 배길수, 그리고 링에서 6위를 한 북한의 신명수와 한국의 여홍철 (뜀틀) 등이 함께 단일 팀을 구성할 경우 세계 2위는 무난하다는 진단이 내려진 것이다. 한편 지난해 세계 3위 독일은 최근 전력이 급전직하, 이번 대회에서 마이크 크라베르크와 마이크 벨레가 마루와 안마에서 각각 3위, 8위를 한 것이 고작이어서 『독일 체조는 끝났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됐다.
또한 지난해 세계 4위이던 일본은 다나카·하다케다·아이하라·이케다니 등의 선수가 고른 기량을 유지하고 있으나 아무도 메달을 따내지 못해 점차 퇴조를 보이고있다. 따라서 남북한이 하나로 뭉칠 경우 세계 2위권 가능이라는 가설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으며 설령 한국만을 떼 놓고 보더라도 올림픽까지 남은 3개월간 다듬질만 잘 한다면 일본과의 3위 다툼에서 승리, 선진 체조의 바로미터인 단체전 3위도 충분하다고 남행웅 체조 협회 전무는 단언한다.
반면 여자 부에서는 남북이 모두 극도의 부진에서 헤매고 있는 가운데 91 세계 선수권 대회 이단 평행봉 우승자인 북한의 김광숙 (이번 대회 불참)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아직 국제 무대에 명함을 내밀기 부끄러운 실정이다. 【파리=신동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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