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조직 불법자금 몰려 "골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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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독일이「검은 돈 세탁소」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별명을 얻고 있다. 이 같은 오명은 일반적으로 정직하다는 독일사람들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시키고있다. 이에 따라 독일정부는 부정한 돈을 차단하기 위해 관계법규를 마련중이나 자신들의 이익이 걸려 있는 집단의 반대로비와 남의 재산을 조사하는 것을 꺼리는 독일인들의 전통적인 성향이 상당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근 착 비즈니스위크 지는「검은 돈」의 은신처로 널리 알려진 스위스가 유럽 및 다른 나라들의 압력에 밀려 지난해부터 이 같은 돈의 실체를 공개하는 추세로 돌아서자 독일이 돈 세탁(머니 론더렁)의 새로운 메카로 부상하고 있다고 전한다.
독일당국은 작년이후 약5백억 달러에 달하는 불법자금이 콜롬비아·터키·이탈리아 등지의 마약범죄조직으로부터 흘러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같은 거액의 블랙 머니는 독일 내 금융기관을 거치면서 합법적인 자금으로 변신(돈 세탁)하고 있다. 미국 FBI에 해당하는 독일연방수사국의 한 고위간부도『독일이 머니 론더링의 새로운 활동무대가 되고있다』고 실토할 정도다.
독일이「검은 돈」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해 이 잡지는 몇 가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우선 독일은 나치통치하에서 게슈타포(비밀경찰)에게 재산을 몰수당했던 쓰라린 역사를 가지고 있는 관계로 비록 범죄활동과 관련된 것일지라도 남의 재산을 조사하거나 압수할 수 있는 법이나 제도 만들기를 꺼린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현금을 선호하는 독일인의 성향이 마약밀매 자들이 거액의 현금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독일로 반입하고 은행에 예금할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도와주는 역할도 한다. 경찰은 혐의가 가는 예금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마약거래와 관련된 물증을 확보하여 법원에 수색영장을 요청해야 하며, 은행은 고객보호차원에서 경찰조사에 비협조적이라는 점도「검은 돈」의 유입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이런 현실아래「검은 돈」이 독일로 유입돼「하얗게」세탁되고 있다는 여러 가지 정황이 이미 포착되고 있는 실정이다. 독일의 슈피겔지는 하노버 근처 코메스 은행의 한 지점장이 그의 부인과 관련돼 있는 마약범죄조직에 여러 개의 예금계좌를 개설해 줌으로써 수십만 달러의 머니 론더팅에 개입된 혐의로 해고되었다는 기사를 전하고있다. 이 잡지는 또 도이치 은행 등 독일 3개 주요은행의 룩셈부르크 자회사들이 과거 콜롬비아의 마약 대부인 곤잘로로드리그가차가 경영하는 유령회사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예금을 받은 적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독일이 불법자금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요즘은 동유럽에서도 마약자금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특히 EC(유럽공동체)내에서 불법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주요 마약중의 하나인 암페타민(중추신경자극제)의 약 20%가 폴란드에서 생산, 공급되고있는데 독일경찰은 독일의 화학회사들이 마약제조에 필요한 원료를 폴란드에 대주고 그 대금을 폴란드은행을 통해 독일은행으로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독일이 이같이「돈 세탁」의 새로운 메카로 부상함에 따라 EC와 미국은 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도록 압력을 가하고있다. 지난해 6월 EC는 회원국들에게 93년까지 검은 돈을 차단할 수 있는 법령을 만들도록 지침을 보내기도 했다. 독일 콜 수상 내각은 이 같은 압력도 압력이지만 자국 이미지를 바로 세우기 위해「돈 세탁」을 불법화하고 거액의 현금예금은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마련중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익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일부은행과 정치인들의 반대로비도 만만찮아 관계법규가 제대로 마련될 지는 아직 단정하기 이른 상태다. 이들의 로비로 머니 론더렁 규제법이 무산될 경우 세계의 마약중개업자들은 그들의「검은 돈」을 독일로 들여와 세탁하는 일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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