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꿈의 공장' 할리우드의 역사와 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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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할리우드 영화사
데이비드 톰슨 지음
이상근 옮김, 까치
624쪽, 2만5000원

코에 큼지막한 반창고를 붙인 젊은 시절의 잭 니컬슨. 그가 존 휴스턴과 나란히 선 '차이나타운'의 한 장면으로 시작되는 첫 장부터, 연대순으로 진행되는 여느 영화사(史)와 확실히 선을 긋는 책이다.

지은이는 뉴욕타임스 등에서 활약하는 정상급 영화평론가 데이비드 톰슨. 내로라 하는 명감독과 명배우, 거물 제작자들이 어떻게 명멸해왔는가를 비롯해 아카데미상 탄생 배경, 걸작들의 제작 뒷이야기, 필름누아르의 생성 등이 당시 사회상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지적 욕구를 만족시켜준다.

'차이나타운' 사례는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 안에서 '일개' 시나리오 작가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를 실감케 한다. 촉망받던 작가 로버트 타운은 얼마 되지 않는 계약금을 받고 시나리오 저작권을 패러마운트사에 넘긴다. 대박을 꿈꾸는 제작자와 유대인 학살의 어두운 기억을 갖고 있던 감독(로만 폴란스키)은 자신들의 취향에 맞춰 결말을 죄다 뜯어고친다. 몸을 떨며 분노한 작가에게는 세트장 출입이 금지된다. 작가가 전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손댄 '차이나타운'은 역설적이게도 아카데미상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각본상을 받았다.

1927년 아카데미상이 처음 생겼을 때 심사위원들이 분열하는 바람에 최우수작품상을 '나눠먹기'식으로 수여했다는 사실을 아는지. 하나는 '영화의 위대함을 신장시키는데 공헌한 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제작비나 스케일을 고려하지 않은, 가장 독특하고 예술적이고 독창적인 상'이었다. 대부분의 영화관련서에는 패러마운트의 '날개(Wings)'가 1회 수상작으로 나와 있지만, 사실은 20세기 폭스의 '선라이즈'도 받았단다.

영화가 미국인의 이혼을 부추겼다는, 상당히 솔깃한 주장도 나온다. "스크린이라는 끝없는 공간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이혼을 암시했던 것도 이혼율 증가의 상당한 원인이었다. (…) 이혼이 가장 쉽게 목격할 수 있는 할리우드의 선구적 생활양식으로 느껴졌다." '꿈의 공장'이 걸어온 길을 단숨에 따라잡고 싶을 때 제일 먼저 집을 만한 참고서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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