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작「실의」등 14편 담아···"아직 만족 못 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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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많이 쓰지도 못했고 또 솔직히 망신당할까봐 책으로 펴내기 두려웠습니다. 신문·잡지사 문학담당자로 20여 년간 활자화 직전의 숱한 작품을 대하다 보니 글에 대한 엄격함이 눈에 배더군요. 그러니 내 작품이 스스로 양에 차겠어요.』
작가 한남규 씨(55)가 첫 번째 창작집『바닷가 소년』(창작과 비평사 간)을 펴냈다. 58년『사상계』에 단편「실의」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한씨로서는 34년 만에야 처녀작품집을 갖게된 것이다.
『바닷가 소년』에는 데뷔작「실의」에서부터 「황구 이야기」「앵두나무 집」「손수레와 퉁소」 「지붕 밑의 한낮」을 비롯, 지난해 발표한「강 건너 저쪽에서」까지 단편 14편이 실렸다.
때문에 이 소설집에는 우리가 지나온 해방 후 40여년 간의 삶이 빛 바랜 흑백사진이 되어 들어있다. 소년의 눈에 비친 한씨 특유의 감성적 문체도 곤궁했던 우리의 삶을 부드럽게 감싸안는가 하면 지성이 녹아든 타령조의 찰진 이야기로 시대를 풍자하며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해 사회학적 상상력과 포스트모더니즘 등 외래사조에 잃어버린 우리 소설의 참 맛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한씨의 소설들을 문학평론가 염무웅 씨는『섬세한 감성과 인간의 생명 활동에 대한 원천적 긍정, 역사적 현실에 대한 예민한 감응력에 의해 가난한 서민생활을 더 할 수 없이 실감 있게 부각시키고 있다』고 평했다.
『문단이 너무 척박해진 것 같아요. 한 쪽은 너무 정치적·사회적 관심만 내세우고 다른 한쪽은 순수·예술성만 내세우며 서로를 용납하지 않고 있으니 답답해요. 60, 70년대 같이 이쪽이다 저쪽이다 상관없이 문인들끼리라면 서슴없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여유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현 문단풍토가 안타깝습니다.』
한복판에서 문단을 지켜온 한씨는 문단은 확장됐으나 날로 파벌화, 문학 외적으로 이익집단화 하는 문단을 아쉬워했다.<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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