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 어머니 총격 사망' 등 각종 유언비어 난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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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버지니아공대 총격난사 참극을 둘러싸고 근거없는 소문과 오보가 끊이지 않는다. 일부 언론은 떠도는 낭설을 여과없이 보도하면서 교민사회는 물론 한국 사회에까지 우려와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센터빌 한인 슈퍼마켓 앞에 '코리언 고 홈(Korean go home)이란 플래카드가 걸렸다더라"

"밤새 애넌데일 한인 제과점 유리창이 박살났다더라"

"한인들에 대한 보복 공격에 대비해 애난데일 경찰들이 완전 무장을 했다던데..."

버지니아텍 참사의 범인이 교포 학생 조승희씨로 밝혀진 이후 미국 한인사회에 나돌고 있는 유언비어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센터빌은 조씨의 집이 있는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소도시로 이곳에 '코리언 고 홈'이란 플래카드가 걸렸다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지역 한인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한인 슈퍼마켓 관계자는 "그런 일 없다. 어떻게 그런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다"며 어이없어했다.

미국 수도 워싱턴 DC 인근의 코리아타운격인 애넌데일의 이름난 한인 제과점 직원도 "여기저기서 유리창이 깨졌느냐고 물어오는데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영업도 평소와 다름없이 잘되고 있는데..."라며 의아해했다.

애넌데일 경찰이 무장했다는 소문도 낭설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워싱턴 한인연합회측은 밝혔다.

한인 학생들과 관련된 유언비어도 많지만 사실로 확인된 경우는 거의 없다.

"백인 학생이 학국 학생 얼굴에 침을 뱉었다더라"라거나 "한국 학생들을 보고 고함을 질러 울었다던데..."라는 등의 이야기들이 수도 없이 나돌고 있는 것.

평소엔 통학버스를 이용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던 한인 학부모들 중엔 이런 험악한 소문 때문에 요며칠 사이엔 아이를 직접 학교까지 태워다주고 데려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처럼 한인사회를 휩쓸고 있는 유언비어들은 버니지아텍 사건 이후 교포사회에 팽배한 불안감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참사의 범인이 교포 학생으로 드러나 혹시 한인들에 대한 피해가 없을까 가뜩이나 불안해하는 마당에 어디선가 그럴듯한 이야기가 나오면 빠른 속도로 부풀려져 퍼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승희씨의 친어머니가 1993년 강도들의 권총 총격에 사망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동포신문 주간 미시간은 20일 "디트로이트 한인들의 제보를 받았다"며 "1992년 조군의 부모가 미국에 이민해 처음으로 정착한 곳은 디트로이트 미시간이었으며, 디트로이트 9마일 로드와 쿨리지 로드에 사이에 위치한 세탁소를 경영했는데, 1993년 강도의 공격을 받고 어머니가 사망한 사실이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제보자들이 "이때 어머니는 가슴에 총탄을 맞고 사망해 디트로이트 한인들이 장례를 치러 주었으며 당시 FOX 2, 로칼 NBC 방송에서도 방영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주간 미시간의 제보를 받은 연합뉴스 측이 추후 확인한 결과 조승희의 어머니가 아니라 가까운 친척이 총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군의 외삼촌 김 모(50) 씨는 20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시댁 쪽에서 그런 일(총격 사망)이 있었다는 얘기를 누나로부터 들었다"며 "오래된 일이라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씨는 또 '가까운 친척이 누구냐'는 질문에 "그냥 가까운 친척인 걸로만 알고 있다. 피해자가 남자인 걸로 전해들은 것 같다"고 전했다.

앞서 라디오 코리아는 17일 "조씨의 아버지가 아들의 범행 소식을 전해듣고 흉기를 이용해 동맥을 끊어 숨졌다는 소문이 버지니아 한인들 사이에서 나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씨의 어머니도 약물을 이용해 자살을 시도했지만 중태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라디오 코리아는 덧붙였다.

그러나 이태식 주미 한국 대사는 20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조승희 부모의 안전을 확인했다"며 "단지 그들이 우리 영사 측과 면담을 원치 않고 있어 접근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확인했다. 이 대사는 "조씨 부모가 매일 장소를 옮기고 있기 때문에 장소도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라디오코리아가 대형오보를 내면서 미국내 교민사회는 물론 한국에까지 근거 없는 우려와 불안감을 심어줬던 것이다.

김영근 워싱턴한인연합회 상임고문은 "CNN 등 미국 주요 언론에서도 이번 사건을 보도하면서 'Korea'를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을 한국인과 연계시키는 미국인이 거의 없는데도 한인들의 막연한 불안을 부추기는 유언비어에 휩쓸리기보다는 더욱 차분하고 현명하게 이번 참사의 충격에 대처해나가는 슬기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강혜란 기자, 블랙스버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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