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총리 취임 후 첫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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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은 늦어도 이번 정기국회까지는 제출하겠다. 비준안이 다음 정부나 국회로 넘어가면 급격히 모멘텀(계기)을 잃게 될 것이다." 19일 중앙일보와 취임 후 첫 인터뷰를 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FTA 전도사' '경제 총리'라는 별칭에 걸맞게 할 말이 많았다. 예정된 시간이 지나 참모들이 "일어설 때가 됐다"고 했을 때도 "괜찮아요. 국민께 좀 더 알려드릴 게 있어요"라며 10여 분 넘게 인터뷰를 계속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들에게 거듭 애도의 뜻을 전하면서도 "(이 사건이) 최근 타결된 한.미 FTA나 비자 발급 등의 현안에 영향을 미칠 사안은 아닐 것으로 확신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보충 설명임)

◆ 한.미 FTA, "꽤 잘된 협상"

-한.미 FTA 협상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보는 각도에 따라 유리한 측면도 있고 불리한 측면도 있을 수 있다. 정부로서는 전체적으로 꽤 잘된 협상이라고 보고 있다. 당초 예상보다도 잘됐다는 판단이다. 교육.의료 분야는 오히려 좀 더 개방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한 총리는 "나는 FTA라는 단어는 잘 안 쓴다"며 인터뷰 내내 '자유무역협정'이란 표현을 썼다)

-농업 분야에서는 충격이 클 수 있는데.

"죄송하지만 불가피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농업 분야는 정부가 분명한 보완.보상 대책과 경쟁력 강화 대책을 세워나갈 것이다. "

-미국과의 협상 타결 직후에 일부 정부 관계자가 농업 분야에 '혁명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어떤 대책을 말하는가. (※한.미 FTA 협상을 총지휘했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달 5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혁명적 농업 대책을 대통령께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누가 그런 표현을 쓰긴 했는데, 나는 그런 표현을 싫어한다. 혁명이란 모든 걸 다 걷어치우자는 얘기 아니냐. 우리 정부는 오래전부터 농업 분야에 지원을 집중해 왔다. 현 정부 들어서도 한.칠레 FTA 타결 이후인 2004년 농업 분야 추가 개방에 대비해 119조원을 투입할 계획을 이미 마련했다. 이 중 절반의 돈이 투입될 5년치 집행계획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은 만큼 이를 활용하는 방안을 농림부와 농림단체.학자 등이 만들고 있다. 이참에 좀 더 효율적인 대책을 만들어 볼 계획이다. 그냥 지원만 하는 게 아니라 '살고 싶은 농촌'을 만드는 게 목표다. 농업을 제대로 한번 해보겠다는 분들은 농촌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겠다."

-협정문 국회 열람은 언제쯤 가능한가.

"한.미 양국이 협정문을 교환했지만 틀린 문자나 숫자는 없는지 꼼꼼히 검증해 봐야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정부가 협상이 잘됐다고만 하는데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비록 불안정한 상태지만 통외통위와 한.미 FTA 체결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는 당장 20일부터 열람을 허용하려 한다. 하지만 아직은 복사하거나 적어갈 수는 없다. 비밀 준수 서약서도 필요하다. 검증이 끝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협정문 전문은 5월 중순 인터넷에 모두 공개할 테니 비판할 게 있으면 그 이후에 비판해 달라. 그 전까지는 정부가 거짓말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수준에서 만족해 주십사 부탁을 드리고 싶다."(※한 총리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 이 부분은 제 말을 그대로 좀 써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미국 정가에서 재협상 요구가 나오고 있는데.

"현 상태에서는 절대 받을 수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미국 정계에서 검토를 하든 말든 우리는 이미 4월 2일 협상이 끝났다고 보고 있다. 그쪽에서 요구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전혀 받을 생각이 없다."

-국회 비준 동의안은 언제쯤 낼 건가.

"협정문 최종 서명만 끝나면 최대한 빨리 낼 생각이다. 늦어도 정기국회 때까지는 제출할 예정이다."

-비준 전망은 어떻게 보나.

"비준은 국회의 몫이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지지율이 70%를 넘고 있다. 국회의원들도 국익을 위해 올바른 판단을 해주리라 기대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할 방침이다. 전망이 나쁘지 않다고 본다."

-얼마 전 개헌 정국이 소멸될 때 노무현 대통령이 "명분이 좋아도 세력이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 한.미 FTA도 국회 비준을 책임지고 주도할 세력이 불투명한 게 현실 아닌가.

"국회의원 한 분 한 분이 일종의 세력이 되는 거다. 꼭 어떤 정당이 지지세력이고 반대세력이라고 보지 않는다. 국회의원들이 우리나라의 장기적 미래를 보고 일자리 창출에 보탬이 된다고 판단하면 그분들이 다 세력화하는 것 아니겠나."

-다음 정부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는데.

"협상이란 게 다 모멘텀(계기)이 있는데, 그럴 경우 협상의 모멘텀이 굉장히 약화될 것이다. 새 국회가 구성돼 새로운 의원들이 다시 협정문을 파악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유리한 협상이라고 보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발효시키는 게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다."

◆ "한.EU FTA 협상 다음달 시작"

-한.미 FTA 이후 한국이 FTA의 허브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후 일정은 어떻게 되나.

"우선 유럽연합(EU)과 협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달 23일께 EU 이사회에서 동의해 주면 다음달 7일께 협상이 시작될 것이다. 캐나다.인도와는 이미 추진 중이고 러시아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 곧바로 협상이 진행될 전망이다.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도 연구를 끝내 놓은 상태다. 결국 거의 모든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엮이게 되면 전 세계 기업들이 한국에 와 사업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일본과는 협상이 중단됐는데.

"2003년 12월부터 2004년 11월까지 여섯 번 협상했는데 일본이 무역액 기준으로 50% 정도밖에는 개방할 수 없다고 해 협상이 중단된 상태다. 일본이 기존 입장만 개선한다면 우리는 언제라도 다시 협상할 용의가 있다."

-중국과도 얘기가 오가고 있는데.

"중국과 협정을 맺을 경우 우리 농업에 부담이 많이 갈 것이다. 다행히 중국은 좀 낮은 수준이라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현재 산.관.학 합동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민감 품목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논의 중이다. 연말께 결과가 나오면 정부 차원에서 향후 협상 전략을 본격 논의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한.중 자유무역협정은 아무래도 차기 정부 몫으로 가지 않겠나 싶다."

◆ "부동산 대책 바꿀 생각 없다"

-FTA 시대를 맞아 국내 기업들의 역차별을 막기 위해서라도 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규제 개혁 문제에 나보다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예전과 달리 앞으로는 우리 경제의 목표를 동반성장에 둬야 한다. 대기업의 고용 창출 효과가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결국 혁신주도형 중소기업이 커야 한다. 대신 대기업들을 위해서는 언제라도 쉽게 뛸 수 있도록 규제를 최대한 많이 풀어줘야 한다. 쓸데없는 규제는 과감히 없애고, 규제 방식도 좀 더 시장친화적으로 바꿔야 한다. 하지만 대표적 규제로 지목되는 출자총액제한제와 수도권 규제의 경우 현 시점에서 폐기해야 할 가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 규제 때문에 뭐가 안 된다는 비판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기업이나 수도권 규제의 대표적 사례가 하이닉스반도체 공장 증설 문제인데.

"그 문제는 수도권 문제라기보다는 구리 배출이라는 환경 문제 때문에 어렵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하이닉스 문제도 구리의 유해성 같은 기준과 해외 사례 등에 대해 치밀하게 연구해 개선의 여지가 있으면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인 만큼 규정대로 할 수밖에 없다. 1단계 확장은 충청도로 가겠지만 이후 상황은 좀 더 시간을 가지고 국민의 공론을 모아야 할 것이다.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문제가 제기된 이상 정부로서는 그것이 과연 합리적 규제인지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과 민영화 문제를 놓고도 논란이 많다.

"현 정부에서도 금융 분야에서는 민영화가 계속돼 왔다. 다만 민영화를 해서 민간 기업이 독점적 이익을 누리는 것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적어도 누군가에 의해 견제받으며 모든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공기업 혁신을 지속해 나갈 방침이다."

-국민연금법 개정안 등 다수의 민생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데.

"이번에 개헌 발의를 하지 않기로 한 뒤 정치권과 정부 사이에 협조적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민주주의를 완성시켜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 국민연금 관련 법안을 비롯해 로스쿨법안 등 여러 현안을 어떻게든 4월 국회에서 일괄 타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동산 대책이 너무 지나쳐 시장을 위축시키고 선의의 피해자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투기는 끝났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일관되게 전달하고자 했다. 이제 정책의 일관성을 의심하는 분위기는 상당 부분 사라진 것 같다. 이런 기조는 현 정부에서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양질의 주택공급을 늘린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송파 신도시도 예정대로 추진할 생각이다. 정책에 영원 불변이란 없지만 현재 부동산 시장이 여전히 '취약한 안정 상태'라고 보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정책을 바꿀 계획이 없다. 아파트가 평당 3000만원, 4000만원 하는 것은 정말 문제 아닌가. 다만 1가구 1주택이면서 10년 이상 장기 보유자의 경우 양도세 부담을 좀 줄여줘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고 본다."

정리=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한덕수 총리는

한덕수 총리는 대학 재학 중 행정고시 8회에 합격한 뒤 1971년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옛 경제기획원에서 일하던 중 82년 부처 교류 차원에서 옛 상공부(현 산업자원부)로 옮겨 통상.산업정책을 담당했다. 당시부터 그는 "청와대 경제수석이 꿈"이라고 말하곤 했다. 개방과 규제 개혁을 주도해 보고 싶다는 욕심에서였다. 실제로 그는 청와대 수석과 경제부총리를 거치면서 "개방만이 살 길"이라고 일관되게 외쳐왔다. 최근에는 한.미 FTA 체결 지원위원장을 맡아 'FTA 전도사'라는 또 다른 별명도 얻었다. 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시절에는 세련된 매너로 '국제신사'로 불리기도 했다.

▶전북 전주(58) ▶경기고.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경제기획원 조정2.3과장 ▶상공부 미주통상.산업정책과장 ▶통상산업부 통상무역실장 ▶특허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통상교섭본부장 ▶주OECD 대사 ▶대통령 정책기획.경제수석비서관 ▶산업연구원장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한.미 FTA 체결 지원위원장 ▶대통령 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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