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속 분노 대상 '너' 일부 부유한 한국 유학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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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가 NBC방송에 보낸 소포 중 동영상 파일에 나오는 부분이다. 여기서 '너'라고 지목한 대상이 누구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앞뒤 정황으로 보면 부유한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15년 전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1.5세대) 대학생인 범인 조승희로서는 일부 부유한 한국 유학생에게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강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미국 내 한인 학생 커뮤니티 내에서의 빈부격차와 문화의 차이가 갈등과 괴리로 이어지면서 이번 사건과 같은 참사를 낳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 보이지 않는 벽=조승희의 부모는 그다지 넉넉한 생활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내내 세탁소나 식당 일에 매달려야만 생계가 가능했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그가 돈을 물 쓰듯 펑펑 뿌리고 다니는 일부 동료 유학생에게 반감을 가졌을 수도 있다.

미국 내 한인 학생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한국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미국에 간 뒤 현지에서 자란 1.5세와, 현지에서 태어난 2세, 또는 3세가 한 부류다. 나머지는 어학연수 등 단기 유학생, 그리고 장기 유학생 그룹이다. 이뿐만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이나 학벌.지역 등 출신 배경에 따라 또다시 세분되기도 한다.

◆ 배타적 문화와 이질감=이민자 자녀는 대부분 모국어 수준의 영어를 구사한다. 그리고 미국 문화 풍토에 익숙해 가정 형편과 관계없이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나 용돈을 충당하는 등 비교적 검소한 생활을 한다는 평이다. 반면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영어 능력이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부유한 부모를 둔 유학생 일부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거나 파티를 즐기며 호화판 생활을 하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끼리끼리'만 어울리는 배타적 문화와 편 가르기는 때로 갈등과 반목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자신이 속한 그룹에서만 교제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풍조가 이번 총격 사건의 저변에 깔린 원인(遠因)일 수 있다. 더군다나 조승희는 이민 1.5세나 2세 그룹에도 속하지 않은 채 외톨이로 남아 있어 불평불만을 해소하기가 더더욱 어려웠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가 "세상이 자신을 구석으로 몰아넣었다"고 말한 데는 부유층 유학생들에 대한 분노와 저주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 조승희의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와 횡설수설에 가까운 자기 합리화 식 행동을 봐서는 정확한 범행 동기를 추측하기가 쉽지 않다. 또 그의 가족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타운하우스를 구입할 정도여서 가난하지도 않았다는 게 주변의 이야기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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