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마을] 눈물의 자장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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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중순, 대학 다니는 아들이 입대를 하게 됐다. 논산 훈련소 근처까지 왔을 때 길가 중국음식점 간판을 본 아들이 쟁반자장을 먹자고 했다. 좀 더 맛난 걸 먹여 들여보내려던 나는 아이 뜻에 따르기로 했다. 옹알이를 배운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장성해 입대를 하다니. 뿌듯함과 착잡한 마음이 엇갈려 음식이 당기진 않았지만 아이 앞이라 맛있게 먹기로 했다. 그런데 첫 젓가락을 집어올린 자장면발이 울컥 목에 걸리는 것이 아닌가. 주책없이 또 그 아주 오래 전 기억이 튀어 나온 탓이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인천역 앞 자유공원 비탈 일대는 판자촌 일색의 달동네였다. 우리 부부는 그곳 단칸 사글셋방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아이를 갖고 입덧이 심했는데 무엇보다 자장면이 먹고 싶었다. 길 바로 건너 차이나타운의 중화요리 냄새가 우리 방까지 스며들어 더 견디기 어려웠다. 먹고 싶은 것을 참고 견디며 아이를 순산했다.

내 입맛을 물려받았는지 유난히 면을 좋아하는 아들이 서너 살 무렵이었다. 주전부리를 시켜주지 않아 눈치꾸러기가 된 아이가 마당에서 놀다 주인집에서 먹고 내놓은 빈 그릇에 붙은 자장면발을 주워 입으로 가져가는 게 눈에 띄었다. 난 어린 것의 손목을 끌어다 사정없이 패기 시작했다. 참으려 해도 눈에서 천불이 나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실컷 두들겨준 뒤 가슴에 끌어안고 함께 울었다. 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부모 자격 없도록 가난한 내 죄인 것을. 그 다음부터 난 자장면이 싫어졌고 강제로 먹으면 바로 체했다. 고민 끝에 늘 자장면 냄새를 맡아야 하는 그 골목을 버리고 다른 달동네로 이사했다.

푸짐한 양의 쟁반자장을 맛있게 먹고 있는 아들은 지금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할 테니 다행이다. 칼바람 낯선 곳에다 아들을 떼어놓고 혼자 돌아오는 차안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자식이 몸집이야 웃자랐을망정 어미의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며칠 뒤면 아들이 백일 휴가를 나온다. 아들을 만나면 짬을 내 차이나타운의 옛 중화요릿집을 찾고 싶다. 자장면을 시켜 나눠먹을 작정이다. 그래야 아들에 대한 작은 속죄가 되지 않을까. 덕분에 내 입도 예전의 자장면 맛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박정순(50.주부.인천 송현동)

5월 4일자 주제는 건망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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