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선거 참패 “문책”/불 크레송 총리 왜 경질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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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실업늘고 당 인기도 최악상태/등돌린 민심 되돌릴지는 의문
2일 단행된 프랑스 총리경질은 집권사회당의 지방선거 참패에 따른 당연한 수순으로 평가된다.
지난달 22일에 실시된 지방의회 선거와 29일의 도 의회선거에서 사회당은 집권당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치욕적 패배를 기록했다.
지방의회 선거에서 사회당의 득표율은 전국적으로 18.3%에 불과,중도우파 연합의 33%에 턱도 없이 뒤지는 것은 물론이고 극우파인 국민전선(13.9%)이나 녹색당계열(14%)과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까지 전락했으며 29일 도 의회 선거에서도 전통적 좌파지역으로 꼽히는 5개 도에서 우파에 패배했다.
이번 선거결과는 내년 3월에 있을 총선에서 사회당이 재집권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셈이다. 따라서 앞으로 임기를 3년이나 남겨놓고 있는 미테랑 대통령으로서는 민심수습과 사회당의 면모일신을 위해 뭔가 단안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됐고 그 첫번째 조치로 나온 것이 바로 총리경질인 셈이다.
지난해 5월 미테랑 대통령은 93년 유럽시장 단일화에 대비한 「새로운 도약」을 내세우며 프랑스 최초로 여성인 크레송 전유럽담당장관(58)을 총리로 전격 기용했다.
그녀의 재임중 실업자는 계속 증가,거의 3백만명(실업률 9.8%)에 육박하고 있고 정치자금 불법조달 시비와 중동 테러리스트 하바시를 비밀리에 입국시킨 것이 폭로된 사건등 각종 스캔들이 끊이지 않은데다 아랍계 이민들이 주로 모여사는 지역에서 사회불안이 계속되는 등 각종 악재가 꼬리를 물었다. 그 결과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크레송 총리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은 역대총리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19%)까지 떨어졌고 이번 선거직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프랑스 국민들의 68%가 그녀의 퇴임을 원하는 상황이 됐다.
크레송 총리의 취임 이후 임명권자인 미테랑 대통령의 인기도 동반하락을 거듭,지난해초 한때 65%까지 올라갔던 지지율이 최근에는 23%로까지 곤두박질 함으로써 결국 크레송 총리는 프랑스 제5공화국 사상 가장 인기없는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와 함께 취임 11개월만에 중도퇴진 할 수밖에 없었다.
신임 피에르 베레고부아 총리는 철도공원에서 일국의 재상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조르주 마르셰 공산당 당수와 함께 바칼로레아(대학 입학자격시험) 자격증을 갖고있지 않은 프랑스의 대표적 정치인이다. 1925년 프랑스 중서부 루앙에서 철도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나치 점령하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다.
전후 프랑스 국영 가스공사에 입사한 이후 좌익운동에 가담,일찍부터 사회당의 주요정치인으로 경력을 쌓았다.
지난 81년 미테랑 대통령 취임과 함께 대통령 비서실장,82년 사회장관,84∼86년 경제재정 예산장관을 거쳐 88년부터 다시 경제 재정예산 장관을 역임했다.
베레고부아 총리는 철저한 통화론자로 프랑스의 인플레를 서방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은 2∼3%로 안정시켰으나 이 과정에서 심각한 실업문제(9.8%)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총리경질 발표직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프랑스 국민의 59%가 베레고부아 총리에 만족감을 나타낸 반면 불만이라는 응답은 23%에 그쳐 일단 그의 출범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있다. 그러나 과연 총선까지 앞으로 남은 1년동안에 그가 사회당에 등을 돌린 국민여론을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내년 총선까지 근본적으로 사회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총리가 누구냐에 달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 여론의 관심은 미테랑 대통령 자신의 거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파진영은 이번 지방선거의 세를 몰아 조기총선과 미테랑 대통령의 조기퇴진을 요구하며 정치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올해로 집권 12년째인 미테랑 대통령은 장기집권에 식상한 국민여론을 의식,7년인 대통령 임기(중임제한 없음)를 5년으로 줄이는 개헌을 위해 금년중 국민투표를 실시할 뜻을 비친바 있다.
따라서 이번 총리 경질에도 불구,국민여론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임기단축 개헌을 서둘러 95년까지의 임기에 관계없이 내년봄 사임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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