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팀의 과제(「남은 10개월」이 중요하다: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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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치”멀리해야 경제산다/대권정국 휩쓸리면 재기불능/인기없더라도 긴축해야 안정
14대 총선에서는 경제실정이 주요 이슈로 등장했고 그 선거에서 집권여당은 패배를 맛보았지만 경제팀이 바뀌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여러 평가가 있지만 6공들어 경제운용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돼 온 것이 시도 때도 없는 물갈이 인사와 이에 따른 잦은 정책변경이고 보면 경제팀이 그대로 유임된 것은 적어도 현재 추진중인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여지는 있다.
정부 스스로는 아직 미흡하기는 하지만 작년 하반기 이후 계속돼온 이른바 총수요관리를 통한 경제의 안정화정책이 차츰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자평하고 있으며 수출입과 국제수지·물가 등의 거시경제지표상 다소의 개선이 엿보임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같은 개선조짐이 추세로 자리잡고 있다고 보기는 시기상조다.
최각규 부총리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경제에 「소중한 싹」이 이제 겨우 나타나기 시작한 정도인데 이 싹이 제대로 자랄 수 있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앞으로의 노력에 달려있다.
그런 점에서 불행하게도 지금은 시기가 매우 좋지 않다. 안정기조의 발판을 다져야할 시기에 연말의 대선을 앞두고 이미 시작된 무한 경쟁,그 기간중 벌어질 해야될 일에 대한 책임회피와 눈치보기,안해도 될일에 대한 인기영합으로 전력투구해도 어려울 경제회복노력이 정치판속에서 녹아버릴 우려가 있다.
따라서 정부가 할 일은 자명하다. 정부가 중심을 잡고 정치논리에 휩쓸리지 않는 경제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안정을 통한 경제의 체질강화라는 방향이 현 상황에서의 올바른 선택이라는데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정부가 잡고 있는 목표수준과 정책수단들은 이와 걸맞지 않는 것이 허다하다.
기본적으로 한자리수 물가목표는 안정이라기엔 낯간지러운 것이며 18.5%라는 통화관리의 목표수준이나 나아가 행정지도를 통한 금리의 반강제적인 인하는 정부의 총수요관리정책이 무엇인지조차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성장을 줄여서라도 안정을 꾀하겠다면 한계기업들의 도산은 감당할 자세가 돼야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총선직전 부도기업에 뒷돈을 대 도산을 막고 정책금융을 양산해 냈다. 이는 경제의 비효율적인 부문을 도려내겠다는,의도적인 성장감속정책과는 도대체가 맞지 않는다. 한 경제관료는 이를 두고 『폐기종에 걸린 환자가 담배를 계속 피우면 폐암에 걸릴 것을 알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격』에 비유한다.
예산편성도 중요한 과제다. 정부는 재정의 「경제안정기능」을 염두에 두고 내년예산을 짜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대선수요에다 세력이 커진 야권과의 정치적 흥정도 생각해야돼 벌써부터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정말로 안정을 최우선과제로 생각한다면 역으로 이 상황이야말로 과감한 재정긴축을 통해 정부의 의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정부는 안정을 외치면서도 사실상 민간부문의 긴축만을 요구해왔다. 대한상의의 최경선 이사는 『정부스스로는 재정긴축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기업과 국민만 나무라고 있다』고 비판하고 『앞으로 공약이 또 난무할 것이므로 정부야말로 붕붕 떠다니지 말고 경제를 다독거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광 교수(외국어대)는 『수십년된 예산제도 자체부터 몸체가 커진 우리경제에 맞는 틀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재정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제도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이를 통해 정부는 정책수단을 금융이 아닌 재정운용에 한정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대선은 새 정권마다 과거와의 단절을 외치는 불행한 일이 재연되지 않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최교수는 현 정부가 다음 정권의 담당자가 누가 되든 올바른 경제정책을 펴나갈 수 있게 기초준비를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한다고 말하고 예컨대 다음정권이 올바른 세재개혁의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지하경제의 실상을 파악하거나 복지실태를 분석하는 등의 노력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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