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퇴임하는 이재성 대법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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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재야 시절 판례 평석 등을 통해 결론만을 간단히 제시하는 대법원 판결의 잘못을 지적해 왔는데 막상 재조에 와서는 같은 잘못을 남기고 떠나는가 봅니다. 어느 곳에서나 현실적인 어려움은 있는 것 같습니다』
6공 출범과 함께 출범한 이일규 대법원장 체제에서 재야 생활 18년만에 대법관에 영입돼 재조 45개월만에 정년 퇴임하는 이재성 대법관(65).
『당시 대법관 임명은 의외였지만 변호사나 법관 모두가 사법부의 한길을 걷는 바에야 자리를 옮기는 것뿐이라는 심정이었습니다. 또 다시 재 조를 떠나는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56년 고시 2회에 합격, 법관 생활을 시작한 이 대법관은 70년 서울 고법 판사를 끝으로 변호사 개업을 한 뒤에도 89년6월 열 번째로 펴낸 『판례 평석집』(법률 문화사간)을 꾸준히 집필하는 등 학술 활동을 계속하면서 민·상법개정 심의 위원, 민사법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상하는 등 민법의 대가로 평가받아 왔다.
『변호사는 판사보다 법조인으로서의 지조를 지키기가 더 어려운 자리입니다. 그 만큼 유혹의 손길과 기회가 많다는 뜻이지요. 또 대법관이라는 자리는 자신이 완벽한 법 이론을 구성해야 할뿐만 아니라 이를 다른 대법관 모두에게 설득해야 한다는 어려움을 갖습니다. 모두 어려운 자리지요』
이 대법관은 상고 허가제 폐지 이후 급격히 늘어난 상고 사건 속에서 대법원이 법률심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사법부의 체질 개선과 법관의 자질 향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법관 시절 사건에 관련된 단 한 건의 청탁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밝힐 수 있다는 이 대법관은 그런데도 자신을「49점 짜리 법관」이라고 겸손해 한다.
이 대법관은 89년 사회 단체의 설립 신고를 행정부가 반려한 처분을 행정 소송으로 다루지 않아 온 종전 판례를『국민이 사법부의 판단을 구해온 이상 사법부는 가급적 이를 다루어야 할 책무가 있다』는 논리를 펴 변경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이었다고 술회했다. <권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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