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임영(영화평론가)|신철 전획물 제작판매 "아이디어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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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필름 프러덕션 신씨네(Shin Cinc)대표 신철(1958년생)은 영화를 기획해 그 기획을 영화사에 판다. 한국 영화계에선 처음으로 생긴 직업적인 아이디어 프러덕션이다.
최초의 기획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강우석 감독·89년)는 황기성 사단에 팔아 관객 20만명을 동원한다.
그의 처녀기획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이 영화는 그후에 속출하는 고교생 입시 지옥 영화 붐의 도화선이 된다.
두번째 기획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김유진 감독·90년)는 새로 생긴 영화사 예필름(대표 고규섭)에 2천5백만원에 팔았다. 흥행은 여의치 않았으나 그 해의 가장 성 실한 영화로 간주되며 중요한 상들을 많이 탄다. 좋은 영화와 흥행은 양립 안되는 경우가 외국에도 흔하다.
세번째 기획 『베를린 리포트』(박광수 감독·91년)는 3천만원에 팔았다. 유럽 올로케, 강수연 출연료 1억원 등 많은 화제를 일으켰지만 결과적으론 흥행이 안돼 불발 아이디어가 되고 말았다.
네번째 기획 『결혼이야기』(김의석 감독)는 피카디리 극장이 새로 설립한 익영 영화사에 4천만원에 팔았다. 이 영화는 2년간의 기획단계에서 시나리오작가 8명이 바뀌고 건네준 마지막 시나리오는 무려 16고째였다. 그만큼 난산이었다. 3월15일 크랭크인해 5월말 완성예정이다. 제작기간 중 신씨네 측에선 세명이 파견근무중이며 그 중엔 신씨의 부인 오정완씨가 실무 프러듀서로 참가하고 있다. 현장에서 뛰는 최초의 여성 PD가 되는 셈이다.
그는 기획을 영화사에 팔았을 때 실제 제작에는 어느 정도 깊이 관여하는가. ①시나리오 완본을 제공한다. ②감독도 같이 지명한다. 이 경우 그 작품은 그 감독이 가장 잘 연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아래 한다. ③영화사와의 협의 아래 주연배우 및 중요 캐스팅까지 관여 한다. ④제작진행을 맡아서 한다. 미국에서의 이른바 실무제작자(Excct]tive Producer) 역할까지 한다. ⑤촬영기간·후반작업 등 전반적인 제작기간도 결정한다. ⑹제작비 명세서를 뽑아준다. 이와 함께 이상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전반적인 기획서를 작성, 제공한다.
그는 어떠한 근거와 자신으로 이러한 전인미담의 아이디어 프러덕션을 설립하고 또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가.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는 뜻은 극장에 걸리는 한국영화마다 번번이 흥행 참패를 하고 나가떨어지는 판국에 과연 수지가 맞겠느냐는 의문을 의미한다.
그는 고교생때 이미 영화를 하겠다고 결심한다. 아버지 신현성씨는 만화가였는데 영화에도 남다른 정열을 가지고 있어서 새 영화마다 구경하는데 그치지 않고 8mm무비카메라를 직접 둘러메고 촬영 제작에 몰두하고는 했다. 어린 신철이 그러한 아버지의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다.
그는 만화에도 소질이 다분해 만화를 할 것이냐, 영화를 할 것이냐로 고민한 시기도 있었다. 서울대 미학과 재학시절에는 앞으로 하게될 영화에 도움이 될까 하고 연극을 한다.
결국 김수용·정지영 감독의 조감독을 한다. 얼마후에는 영화사 우성사 기획실에 들어가 장길수 감독의 데뷔작『밤의 열기속으로』제작을 거든다. 다시 그후에는 피카디리 극장에 들어가 선전광고 일을 보고 명보극장에서는 기획실장을 하며 광고홍보 일을 전담한다.
이 당시 영화계에는 명보극장에 젊은 준재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아 필자도 귀담아들은 적이 있다.
이러한 경력을 발판으로 그는 현재의 신씨네를 설립하게 된다. 그는 현재사원 8명을 거느리고 있으며 신인작가·신인감독 양성을 위해서도 여러가지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신씨네를 운영해오며 결코 수지가 맞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화계에서 누군가 개척해가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은인자중 버티고 있다.
재래식 영화사에선 불가능한 일들이 신씨네에선 가능하다고 그는 말한다.
사원 모두의 의견이 존중되고 다각적으로 검토되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목표는 직배영화들을 능가하는 한국영화들을 꼭 만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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