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부부 7%는 다른 피부색의 결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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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 대법원은 1967년 백인과 다른 인종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런 법을 시행하던 버지니아주를 상대로 백인 남성 리처드 러빙이 낸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른바 '러빙 대 버지니아'사건 판결로 버지니아를 비롯한 27개 주는 인종을 차별하는 내용의 결혼 관련법을 바꿔야 했다.

그 판결이 나온 지 40년. 미국에선 다른 인종 간 결혼이 크게 늘어났다. 스탠퍼드대 마이클 로젠펠드(사회학) 교수는 12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2005년 현재 5900만 쌍의 부부 중 7%(413만)가 다른 인종끼리의 결합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70년의 비율 2%와 비교하면 결혼의 양상은 대폭 달라졌다"고 말했다.

통신은 인구조사 통계를 인용, 백인과 흑인의 결혼이 1970년에는 6만5000건이었으나 2005년엔 42만2000건으로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시카고 트리뷴의 얼마 전 보도에 따르면 2005년 백인과 아시아인이 결혼한 경우는 75만5000건이었다. 백인과 중남미계가 결혼한 사례는 무려 175만 건이었다.

◆ 유명 인사 인종 간 결혼도 늘어=미국의 유명 인사들이 배우자로 다른 인종을 선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백인인 윌리엄 코언 전 국방장관,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는 흑인을 아내로 맞이했다. 흑인인 대법관 클래런스 토머스, 시민운동 지도자 줄리언 본드는 백인 여성과 결혼했다. 흑인 여성으로 상원의원을 지낸 캐럴 모슬리 브라운의 남편은 백인이다.

지난해 흑인으론 처음 구세군 지도자 자리에 오른 이스라엘 가이더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던 해인 67년 구세군에서 최초로 백인 여성과 결혼했다. 당시 그의 결혼은 백인 중심의 구세군에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을 꿈꾸는 민주당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다른 인종 간 결합의 산물이다. 오바마의 아버지는 케냐 출신 흑인이고, 어머니는 캔자스주에서 태어난 백인이다. 우즈의 아버지는 백인 피가 섞인 흑인이고, 어머니는 중국인 피가 섞인 태국인이다.

AP통신은 "다른 인종 간 결혼이 급증하는 이유는 세계 각국의 이민자가 미국으로 몰려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러한 결혼이 늘면서 인종 간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젠펠드 교수는 "만일 다른 인종이 한 가족의 구성원이 되면 가족은 그를 더 이상 남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며 "피가 섞이는 건 (사회적으로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통신은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압도적인 다수가 다른 인종 간 결혼에 찬성한다"며 "특히 젊은 층의 지지가 높다"고 했다. 따라서 인종이 다른 젊은이들의 결혼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 러빙 대 버지니아'사건=1958년 버지니아주 경찰은 워싱턴에서 결혼식을 올린 흑인 여성 밀드레드 지터(18)와 백인 남성 러빙(24)을 법을 어겼다며 체포했다. 주 법원은 둘에게 징역 1년형을 선고했고, 러빙은 대법원에 주 법의 위헌 여부를 가려 달라고 제소했다. 대법원은 오랜 심사를 한 끝에 67년 6월 "주 법이 개인의 삶과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14조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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