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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서 자란 벌레엔 향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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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예술인의 삶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우리 국민의 예술에 대한 관심이나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이는 수치로 드러난다. 문화관광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문화 향수 조사 결과를 보면 2005년 6월부터 2006년 5월 사이에 1회 이상 예술행사를 즐긴 사람은 설문 응답자 중 65.8%였다. 2003년보다 3.4% 늘어난 것이지만 이는 영화 관람객 증가로 인한 것이고 다른 분야는 모두 줄었다. 미술 관람객은 10.4%에서 6.8%로, 클래식은 6.3%에서 3.6%로, 전통예술은 5.2%에서 4.4%로, 연극과 뮤지컬은 11.1%에서 8.1%로 떨어졌다. 우리 국민이 이처럼 문화예술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은 갈수록 팍팍해지는 삶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전통 경제학적 입장에서 본다면 문화예술은 직접적으로는 생산과 무관한 낭비이자 사치다. 그러나 인간의 생산.경제 활동에서 정신의 작용을 간과할 수는 없다. 과문한 탓으로 문화예술이 부의 축적에 기여하는 바를 계량화한 경제학 이론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잘사는 나라들이 모두 문화 선진국인 것을 보면 양자 간에 인과관계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일찍이 문화예술의 경제적 이득과 정신적 이득을 동시에 간파한 이는 조선 후기 사상가 박제가다. 그는 조선의 가난과 후진성은 검소함 때문이며 예술을 즐기고 사치해야 나라가 잘살게 된다고 설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재물이란 우물에 비유할 수 있다. 퍼내면 늘 물이 가득하지만 길어내기를 그만두면 물이 말라버림과 같다. 화려한 비단옷을 입지 않으므로 나라에는 비단을 짜는 사람이 없고, 그로 인해 여인의 기술이 피폐해졌다."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하고 검소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은 조선에서 박제가는 세계화를 부르짖고 부국과 문명세계로의 길을 열고자 했다. 조선시대에는 예술을 잡기(雜技), 말예(末藝), 천기(賤技)라 하고 회화 감상을 완물상지(玩物喪志.물건을 즐기면 뜻을 잃는다)라 하여 특히 회화 감상을 군자가 경계해야 할 금기로 여겼다. 박제가는 이를 통렬히 비판하면서 이렇게도 썼다. "저 푸른 산과 흰 구름은 먹거나 입을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건만 사람들은 사랑하여 마지않는다. 만약 저러한 골동품과 서화가 백성에게 아무 관련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좋아할 줄도 모르고 그에 관해 무지하다면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중략) 꽃에서 자란 벌레는 그 날개나 더듬이조차 향기가 나지만 똥구덩이에서 자란 벌레는 구물구물거리며 더러운 것이 많은 법이다. 사물도 본래가 이러하거니와 사람이야 당연히 그러하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의 더듬이와 날개에서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북학의' 128쪽, 안대회 옮김, 돌베게 간)

우리가 굳이 조선시대의 가난과 박제가를 떠올려야 하는 것은 당시의 상황에서 교훈을 찾고자 함에서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정치가 세상을 바꾼다고 말하고 경제를 하는 사람은 경제가 세상을 바꾼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치와 경제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문화다.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은 문화의 위상에 대해 진리를 말했다. "가장 핵심적인 보수의 진리는, 사회의 성공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문화라는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진보의 진리는, 정치가 문화를 바꿀 수 있으며 그리하여 정치를 정치 자신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문화다.

김순응 K옥션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