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차별」 당략에 쐐기/의원선거법 위헌결정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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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4대 선거전 합법성 자체에 시비 소지/이미 진행된 「위헌선거운동」 처리 주목
헌법재판소가 13일 정당후보자가 무소속후보자보다 정당연설회 및 홍보유인물을 통해 더 많은 선거운동을 할수 있도록한 국회의원선거법(제55조의 3 제7항 및 제56조) 규정은 균등기회를 보장하지 않는한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려 제14대 총선을 불과 11일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헌재는 89년 9월 국회의원후보의 기탁금제도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데 이어 또다시 여·야 정당의 합의로 지난해 12월 개정된 선거법 일부조항에 대해 전원일치의 한정위헌(조건부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선거의 자유와 기회균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헌법정신을 재천명한것으로 주목된다.
또한 헌재는 국회의원선거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지난달 25일 신청돼 신청후 한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조속한 심리를 통해 첫 한정위헌결정을 내림으로써 이번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자의 권리침해를 최소화했다는데서도 그 의지를 엿볼수 있다.
◇의미=한정위헌결정이란 법률의 효력을 상실케하는 위헌결정의 하나로 헌재결정이후 선관위는 무소속후보자에게 정당후보와 동일한 연설기회 및 홍보유인물을 발간토록 허용해야 하며 이같은 조치가 뒤따르지 않더라도 정당후보자와 같은 횟수의 무소속 후보자의 연설회 및 홍보유인물배포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헌재의 해석이다.
헌재의 결정은 ▲법규정의 효력상실 ▲평등한 기회부여 등 2가지로 해석할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이미 위헌규정에 따른 선거운동이 행해졌으므로 남은 선거운동기간중 무소속 후보에게 같은 기회를 부여해야만 선거후의 집단소송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게 헌재측의 해석이다.
서독연방 헌재는 지난해 연방의회선거법 일부조항에 한정위헌결정을 내린바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헌재발족이후 이번 한정위헌결정이 처음이다.
그동안 국회의원선거법은 당리당략에 따른 정당간의 타협의 산물로 「공천헌금」을 마련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계층이나 정치적 소신을 가진 무소속후보자들의 정계진출을 사실상 봉쇄하는 결과를 낳아왔다.
특히 특정인을 중심으로한 우리나라 정당의 현실구조가 당내 민주주의를 허용하지 않아온데다 지역유권자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채 정당공천이 행사돼 유능한 정치신인 또는 정치적 소신을 가진 신인의 등용이 사실상 봉쇄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선거법 입법이 국회의 고유기능이며 국회가 정당정치를 존중해온 현실에 비추어 이같은 정당후보 우선권은 정당,또는 현역의원의 프리미엄정도로 묵인돼 왔던 것.
이번 헌재결정은 입법기능이 국회의 고유권한이라 하더라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한 일정정도 제한할수 밖에 없다는 헌재 고유기능과 권한을 뚜렷이 확립하는 전례를 남겼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헌재결정을 계기로 정치권이 민주화추세와 국민의 성숙된 의식수준 고양에 어긋나는 더이상의 정략적 입법을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영향=이같은 결정은 현재 선거운동 과정에서 심각한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무소속후보의 입지를 강화함으로써 총선결과에 적지않은 돌출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며 특히 대구·경북지역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친여무소속후보의 약진이 예상되고 있다.
22일까지 모두 1백42차례 예정돼 있는 각 당의 정당연설회는 12일 현재 이미 57건이 치러진 상태.
중앙선관위는 13일 헌재의 결정문을 접수받은 즉시 긴급 전체위원회(위원장 윤관)를 열어 무소속에게도 지지자 연설회와 2종 홍보물을 추가로 배포할 수 있도록 허용키로 했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방법은 편법·변칙이므로 정당연설회에 정당후보의 연설 및 정당홍보물 배포를 금지토록 해야한다는 의견도 있으나 현실적으로 이미 정당연설회가 진행됐고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점 때문에 난점이 있다는 것.
선관위의 결정이 아직 명확하게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13일 예정된 26건의 정당연설회는 그대로 치러지게 된다.
무소속 후보들은 그동안 지구당 창당·개편대회,의정활동·귀향보고회 등을 일체 개최할수 없게돼 「사실상의 사전선거운동」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며 선거공고일 후에도 공공장소나 상가같은 곳 외에는 다른 선거운동방법이 거의 전무해 현행선거법 제도에 강한 반발을 보여왔다.
헌재의 결정이 정당·무소속후보간 형평성을 제고시키긴 했으나 여전히 당원단합대회 명목으로 음양으로 진행되는 정당의 사랑방좌담회는 호별방문 금지 조항에 묶인 무소속 후보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
그러나 정당쪽에서는 정당과 무소속후보의 물리적 평등을 강요하는 이같은 결정이 정당민주주의 근거를 뒤흔드는 요소라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전영기·권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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