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벌리는 부끄러운 유권자들/이규진 기동취재반(총선 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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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따르릉­.
『예 ○○당 중구 ○○○사무실 입니다.』
『△△동에 사는 당원인데요. 우리 지지표가 달아나려고 하는데 손을 써야 되겠어요,급히 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직 선거운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그런 식으로 하면 선거법에 걸립니다.』
『그래도 다른 쪽으로 넘어가기전에 돈을 써야 되지 않겠어요.』
『안됩니다. 꼭 하실 말이 있으시면 당사무실에 직접 오셔서 말씀해 주십시오.』
3일 오후 4시쯤 기자가 취재차 대전 모당의 한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걸려온 전화대화 내용이다. 이 관계자 이야기로는 하루에도 수십통씩 이런 전화가 걸려 온다는 것이다.
바로 타락을 유도하는 유권자들의 유혹의 손길이다.
특히 무슨무슨 부인회니 청년회니 하는 관변단체와 사회단체들이 선거철에 보이는 태도는 마치 한철을 만난 장사꾼 모습이다. 정당관계자들 이야기로는 회식비용·관광비용으로 30만∼50만원의 뒷돈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는 대학입학철과 겹쳐 대학서클에서까지 신입생 환영축하파티비용이다,유인물제작비용이다 해서 지원금을 요구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한손엔 공명선거 피킷을 들고 입으론 깨끗한 선거를 외치면서 다른 손으로 한표가 아쉬운 후보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격이다. 알만큼 알고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손을 내미는데 데 적극적인 세태다.
물론 역대선거에서 주로 집권당후보들이 유권자들을 타락시키는 각종 향응과 매표행위를 했고 지금도 후보자들이 틈만 있으면 그러니까 일부 유권자들도 덩달아 하는 짓일 터이지만 이것은 분명하고 단호하게 끊어야 될 악순환의 고리다.
정치인들의 부패성향에다가 이렇게 돈을 요구하는 유권자들이 있으니까 국회의원들의 부조리가 더욱 발생하고 우리나라 정치가 한층 혼탁하게 되는 것이다.
선거일이 공고되기도 전에 벌써부터 이런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니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그 혼탁상이 어떨까 벌써부터 두려워진다.
곳곳에 나붙은 『받는 손 사라지면 주는 손도 사라진다』는 공명선거 표어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취재현장이었다.<대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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