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청산하고 동반협력/독­체코 우호조약 체결의 의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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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차 세계대전 전후처리의 사실상 종결
27일 체코의 프라하에서 헬무트 콜 독일총리와 바츨라프 하벨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사이에 서명,체결된 양국 선린우호조약은 침략과 보복으로 얼룩진 두나라 사이의 과거를 청산하고 동반협력의 새로운 장을 여는 기념비적 의의를 갖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조약은 나아가 이미 체결된 독·소,독·폴란드 선린우호조약과 함께 유럽에서 2차세계대전 전후처리 문제를 사실상 종결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지난 73년 당시 서독과 체코사이에 체결된 프라하 조약을 대체하게 되는 이번 조약에 따라 양국은 현국경선을 항구불변으로 인정하며 앞으로 어떠한 이의도 제기할 수 없게 됐다.
또 양측은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며 특히 체코의 유럽공동체(EC) 가입노력을 독일측이 적극 지원하기로 명문화했다.
지난해 10월 가조인된 이 조약은 당초 금년초 정식서명될 예정이었으나 양측 모두의 사정으로 한달이상 연기된 끝에 이날 서명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독·소조약이나 독·파조약체결때도 관건이 됐던 독일계 소수 민족대우문제에 덧붙여 2차대전 종전직후 체코에서 추방된 독일인들의 재산문제가 걸림돌로 등장했던 것.
이 다툼의 역사적 배경은 1938년의 뮌헨협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히틀러의 계략으로 체결된 뮌헨협정에 따라 당시 독일계 주민이 많이 살던 체코 북부와 서부의 주데텐지방이 독일영토가 됐다.
그러나 2차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한후 이 지방은 다시 체코영토가 됐고 이 과정에서 약 3백만명의 독일인들이 강제추방됐다.
주로 독일 바이에른주에 정착한 이들 추방민들은 지난해 10월 양국조약이 가조인되자 자신들이 체코에 두고온 재산반환요구를 제기했고 유권자인 이들을 대변해야 하는 바이에른주의 기사당(CSU·집권 기민당의 연정파트너)은 이에 대한 명확한 특별규정을 요구하며 조약체결에 반대해왔다.
거꾸로 체코쪽에서는 이번 조약에서 뮌헨협정이 「처음부터」 무효라고 규정할 것을 요구하며 이 조약에 대해 반대하는 데모가 잇따랐다.
나아가 일부 민족주의 세력과 구공산당 세력들은 『하벨 대통령이 이번 조약을 「독일 페이스」로 체결,나라를 팔아먹고 있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체코측의 이같은 움직임은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면서 독일의 간판기업인 폴크스 바겐사·다임러 벤츠사·지멘스사 등이 대거 진출,체코에 대한 외국인투자의 80%를 독일이 차지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경제력에 의한 제2의 합병이 아니냐는 우려가 체코사회에 팽배해있는 것이 배경에 깔려 있다.
양국은 이처럼 이해가 엇갈리는 현안문제를 이번 조약에서 제외시키는 방법으로 협상을 타결했다.
이는 경제적 지원은 물론 대서유럽창구로서 독일과의 협력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체코의 입장과 동서를 망라하는 유럽의 중심국으로 발돋움하려는 독일의 입장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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