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한나라 어떻게 줬나] 채권 뭉치, 책처럼 포장해 전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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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나라당이 모금한 불법 대선자금의 큰 덩어리 하나가 또 드러났다.

재계 1위인 삼성의 1백52억원이다.

SK는 현금 1백억원을 비닐 쇼핑백에 1억원씩 담아서, LG는 현금 1백50억원을 상자 63개에 담아 트럭째 줬다. 삼성은 부피가 작고 자금 추적이 어려운 국민주택채권을 이용했다.


분주한 이회창씨 집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 자택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홍사덕 한나라당 총무, 김무성 의원, 유승민 전 여의도연구소장, 이종구.이병기 전 李후보 특보(왼쪽부터)가 10일 서울 옥인동 李전후보 자택을 방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10일 검찰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지난해 10월 삼성 측에 50억원을 먼저 요구했다.

삼성 측은 공식 후원금 한도가 남아 있는 10억원은 영수증 처리를 해 정상적으로 줬고, 나머지 40억원은 현찰로 불법으로 제공했다. 문제의 40억원에 대해 문효남 대검 수사기획관은 "전달 경로 등을 좀더 수사한 뒤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은 11월 초 다른 기업들과 액수를 비교해 가며 삼성구조조정본부 尹모 전무에게 추가 자금을 요구했다고 한다.

결국 삼성 측은 1백억원을 더 주기로 했고, 국민주택채권 1백12억원어치를 제공했다.

12억원은 채권을 현금화할 때 할인되는 비용 성격이었다. 文수사기획관은 "1백억원 정도를 즉각 쓸 수 있도록 하면서도 전달 과정의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채권을 택했으며, 자금 시장에서 채권을 할인할 때 이자율 등을 넉넉히 감안해 12억원어치를 더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돈을 전달받은 사람은 9일 밤 구속 수감된 서정우 변호사였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핵심 측근인 그가 마침 삼성중공업 사외이사여서 자연스레 전달 방식 등이 논의됐다고 한다.

삼성 측은 액면가 5백만원.1천만원짜리 국민주택채권으로 55억원을 마련해 11월 중순 서울 대치동 법무법인 광장에 있는 徐씨의 사무실로 찾아가 1차로 전달했다. "책처럼 보이도록 수표 두배 크기인 채권을 두 줄로 쌓은 뒤 포장해 전달했다"는 게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같은 달 하순에 똑같은 방식으로 57억원어치의 채권이 徐씨에게 두번째로 건네졌다.

그러나 이 채권들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徐씨의 계속되는 함구와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잠적으로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11일 출두하도록 통보한 崔의원 등에게 불법 대선자금의 규모와 용처 등을 추궁할 방침이지만 한나라당의 수사 기피로 진도는 더디게 나가고 있다.

한편 한나라당에 준 불법자금의 출처에 대해 삼성 측은 "평소 채권.현금 등으로 보관하던 대주주의 개인 돈 중 일부"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검찰이 이건희 회장 등 삼성그룹 대주주들을 상대로 확인작업을 할 것인지가 주목된다. 검찰은 이 자금이 삼성 측이 분식회계 등을 통해 마련한 비자금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한나라당이 기업들로부터 마구잡이식으로 돈을 거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남에 따라 다른 기업들로부터 받은 불법자금에 대해서도 최대한 밝혀낸다는 입장이다.

강주안.임장혁 기자<jooa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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