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끼리 재산증여 경우/빚까지 세금부과는 위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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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헌법재판소 결정 “현행 세법은 행정편의주의”
가족간 증여의 경우 증여재산에 포함된 채무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토록한 상속세법규정(제29조의 4 제2항)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변정수 재판관)는 25일 한순래씨(서울 신정동)등 6명이 낸 위헌심판사건에서 『가족등 특수신분관계라는 이유만으로 채무인수의 진위를 구분하지도 않은채 채무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토록한 규정은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돼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의 이 결정은 빚을 포함한 재산을 증여받은 사람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과중한 세금을 부담해온 피해를 구제하고 과세요건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세금을 부과해온 행정편의 주의에 쐐기를 박은 것으로 주목된다.
그러나 세무당국은 가족간의 증여등에서는 거래내용의 진위를 가려낸다는 것이 어려운데다 불필요한 행정력이 낭비되고 가족간의 거래를 조사함으로써 사생활침해가 될뿐만 아니라 채무조작을 통한 탈세가 우려된다고 밝히고 있어 편법적인 증여를 통한 탈세방지대책 마련이 시급하게 됐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조세법의 목적이나 내용은 국민의 평등권·재산권등 기본권을 보장한 헌법이념과 합치해야 한다』고 밝히고 『가족간의 증여당사자를 일반증여당사자와 구분해 사전에 넘겨받은 채무액까지 세금을 물리는 것은 기본권을 제한 내지 박탈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세무당국은 넘겨받은 채무의 사실여부를 가려야할뿐만 아니라 「의심있을때 과세한다」는 세무당국의 국고주의적·행정편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하는 민주적 헌법이념에 부합하는 조세정의를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할것』이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헌재의 결정은 편법을 동원,조세를 회피하고 혈육간의 담합을 통해 세금을 포탈해온 조세현실을 무시한 것』이라면서 『이번 결정으로 막대한 빚을 진뒤 부동산을 증여하고 현금으로 빚을 대신 갚는 세금포탈수법 등을 막을길이 막연해졌다』고 우려했다.
한편 헌재 조규광·이시윤 재판관등 2명은 이에 대해 한정합헌으로 소수의견을 냈다.
한씨는 84년 8월23일 어머니 김화순씨로부터 서울 신정동 시가 9천5백여만원 상당의 지상 3층·지하1층건물을 넘겨받았으나 건물을 지으면서 생긴 빚 6천2백만원과 기초공제 1천5백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증여재산에 대해서만 증여세를 납부했다 양천세무서가 채무에까지 세금을 부과하자 소송을 낸뒤 위헌심판을 청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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