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무시 … 취업난만 키울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재계가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정책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5단체는 9일 부회장단 간담회를 열고 "최근 정부 정책은 노동.고용시장 현실과 기업의 연공서열 등 인사 체계를 무시한 채 경제계 부담만 가중시키는 과도한 보호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재계의 이 같은 반발은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노무현 정부의 최근 노동 정책이 급격하게 친(親)노동계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인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재계가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정부의 기본적인 정책기능마저 거부하느냐"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픽 크게보기

◆ 재계 반발=경제 5단체는 이날 성명에서 "최근 취업난 등의 근본 원인은 과도한 규제 위주 고용정책의 산물"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고용의 모든 단계에 걸친 연령 차별 금지, 배우자 출산휴가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 등을 도입하는 것은 과도한 고용 보호이며 고용의 경직성만 심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남녀고용평등 및 직장.가정생활의 양립 지원 법안'은 현재 대부분의 근로자가 연차휴가도 모두 가지 못하고 수당으로 보상받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캐디 등 특수 고용직에 노동2권 또는 노동3권을 주자는 정책 구상이다.

연령 차별 금지법안에 대해서도 재계는 사실상 정년 연장 효과가 있다고 우려한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국내 대부분의 기업은 연공서열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연령 차별 금지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직무와 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 확립이 전제조건"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정부와 노동계 주도로 마련된 '감시.단속적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확대적용'이 최근 어떠한 부작용을 낳고 있는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적용 대상에 포함된 아파트 경비원의 고용은 오히려 위축됐다. '선의의 정책이 악의적 결과'를 낳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노동계 입장=민주노총 우문숙 대변인은 "재계가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기본적인 정부 정책마저 거부하겠다는 것이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필요할 때만 대화하고, 조금 불리하면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노사문제를 다루는 정도(正道)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도 '경제 5단체의 몰상식적인 요구를 규탄한다'는 성명에서 "(재계가) 비정규직을 남용하도록 방치해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연령 차별 금지와 남녀고용평등법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의 장래 및 존립과 관련된 저출산 고령화 대책을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포기하라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노기혁 노동부 홍보팀장은 "최근 노동부가 추진하는 것들은 몇 년 전부터 노사정위 등에서 논의를 거친 것"이라며 "이를 친노동으로 모는 것은 구체적인 사안을 문제 삼기보다 취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노사정위원회 관계자는 "모처럼 대화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사용자가 협상을 하기보다 장외에서 일방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모양새가 안 좋다"고 말했다.

김기찬.서경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