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원 받고 바로 풀어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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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04년 6월 서울남부지검 수사과 직원 배모(43.7급)씨는 귀가 번쩍 뜨이는 정보를 입수했다. 중랑구 중화동에 가짜 루이뷔통 제품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동료 직원 김모(34.8급)씨와 함께 곧바로 현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가방용 가죽과 루이뷔통 라벨이 나뒹굴고 있었다. 이들은 현장에서 업주 김모(44)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배씨 등은 검찰청사에 도착할 무렵 업주 김씨에게서 "1000만원을 줄 테니 풀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김씨는 곧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현금 1000만원을 대출받아 가져 오도록 했다. 불과 한 시간여 만에 현금이 담긴 쇼핑백은 직원들에게 건네졌고, 김씨는 풀려났다. 이후 배씨 등 직원 두 명과 관련 정보를 제공했던 곽모(44.구속영장 신청)씨 등 세 명은 330만원씩 나눠 가졌다. 배씨 등은 단속 사실을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가짜 명품제작 업체를 단속하는 일부 사설 용역업체 직원들이 돈을 받고 있다"는 첩보에 따라 수사에 나선 경찰에 걸려들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9일 뇌물 혐의(수뢰 후 부정처사)로 배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배씨와 함께 돈을 나눠 가졌던 직원 김씨는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 수사 결과 배씨는 2003년 10월에도 한 업자로부터 300만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일부 검찰 직원과 용역업체 직원이 결탁해 금품을 뜯어낸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 중"이라 말했다. 지적재산권 사설 단속업체들은 별도의 법인으로, 명품 회사의 외주를 받아 짝통 제작이나 유통의 증거를 수집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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