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이 대통령/기성정치인에 “무차별 폭언”(지구촌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수염달린 좀비”“마피아 두목” 입만열면 인신공격/정계·언론선 “대통령은 미쳤다”… 국민 “속시원하다”
요즈음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은 누가 뭐래도 프란체스코 코시가 대통령(64)이다.
기성정치인 모두에 대해 쏟아놓는 무차별적 독설과 폭언으로 정치에 식상한 이탈리아 대중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입만 열었다하면 그의 입에서는 인신공격성의 험담이 쉴새없이 쏟아져나오고,그의 험구는 여야·친소·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유력정당인 좌익민주당(PDS 구공산당)의 아킬레 오케토당수를 「수염달린 좀비」에 비유,물의를 빚는가 하면 심지어 자신이 40여년간 몸담았던 기민당(DC)의 안토니오 가바 원내총무를 「마피아두목」이라고 부르는 폭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얼마전에는 공화당의 지오르지오 라말파 사무총장을 평하면서 「항상 다된 밥에 재뿌리는 친구」라고 말해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당하는 정치인들은 기분 나쁘겠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재미있다 못해 통쾌한 심정으로 그의 독설을 즐기고 있다.
그래서 이탈리아텔리비전들은 서로 코시가 대통령을 화면에 등장시키려고 총력전을 펴왔다.
그만 나왔다하면 시청률이 폭발직전까지 치솟기 때문이다.
오는 4월5일로 예정된 총선을 앞둔 요즘에는 각 방송사들이 대통령의 화면독점을 서로 자제하자고 결의하는 진풍경마저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내각책임제 이탈리아에서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국가를 상징하는 존재에 불과하고 실권은 총리에게 있다.
그런만큼 코시가 대통령의 앞뒤 안가리는 언동은 이탈리아 정치권의 당연한 논란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그의 독설에 부대끼고 있는 이탈리아정치인들은 영국을 예로 들며 『만일 엘리자베스여왕이 대처는 어떻고,메이저는 어떻고 하며 떠들고 다닌다면 나라꼴이 뭐가 되겠느냐』며 분수(?)를 넘어선 그의 언동에 심한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
요즘들어 부쩍 심해지고 있는 코시가 대통령의 독설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약2년전인 지난 90년께부터다.
그 이전까지만해도 그는 「말없는 사르디니아인」 이탈리아남부 사르디니아섬 출신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말을 사리고,조심하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지난 85년 6월 상·하양원의 압도적 지지로 그가 대통령에 선출된 것도 정권교체가 빈번한 정치풍토에서 신중하고 침묵할줄 아는 그의 성격이 모든 정파로부터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어느날부터 좌충우돌식의 폭언과 독설을 쉴새없이 늘어놓기 시작하면서 정신이상이 된게 틀림없다는 소문마저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코시가는 미쳤다」는 컷이 신문제목으로 버젓이 등장하고 있는가 하면 「그가 조국을 위해 할수 있는 마지막 봉사는 하루속히 물러나는 것뿐」이라는 내용의 사설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정신이상 운운하는 일부의 소문에 대해 코웃음치면서 자신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 세태를 한탄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의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와의 회견에서 그는 『사람들이 내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니 할수없이 소리를 질러 보는 것』이라면서 자신은 기본적으로 여전히 조용하고 수줍음 많은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얼마전 『고독한 인간,코시가』란 전기를 펴낸 이탈리아작가 파올로 구잔티는 『겉으로는 실성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는 멀쩡한 사람』이라며 일부의 억측을 일축하고 있다.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유럽을 갈라놓은 철의 장막은 또한 이탈리아를 두쪽으로 갈라놓았다. 우리는 유럽에서 가장 유능하고 지적인 공산당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40년동안 기민당은 공산당을 저지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결과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지금에도 이탈리아정치는 망국적인 파당정치의 질곡에서 신음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치인들은 하루빨리 그 질곡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체없이 대통령중심제로 전환하고,선거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
요즘 들어 그가 쏟아놓는 독설과 폭언은 어김없이 이러한 주장으로 끝을 맺고있다.
7년임기가 끝나는 오는 6월로 정계에서 은퇴할 생각이라는 그의 취미는 장서수집으로 그는 2만5천권의 개인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틈날때마다 로마시내 고서점을 뒤지고 다니는 그는 요즈음 마르크스와 헤겔을 탐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파리=배명복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