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정착을 위한 현장점검-청소년 이용실태|어른들은 몰라요 새로운 「놀이」로 정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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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 K여고1년 정모양은 한국 공연을 앞둔 「뉴 키즈 온더 블록」의 음악비디오를 친구들과 돌러본다. 친척이 일본 여행 중 사다준 이 비디오는 일본어 자막이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화질·음질이 매우 깨끗하다. 이 음악 비디오를 「뉴 키즈 온더 블록 팬클럽」에 기증, 팬들끼리 공유하도록 종용받는다. 비디오 기기가 1개밖에 없어 기증하는 것은 동네 비디오점에서 공 테이프 값까지 포함, 1만원에 복사해주는 것으로 한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 J중학교 3년 김모군은 어렵게 구한 비디오를 자랑하고 싶었다. 단골로 몇 년째 다니던 개포동집 근처 비디오점에서 말로만 듣던 포르노 비디오를 복사해줬기 때문이다. 김군은 『다이하드2』『터미네이터2』등 여러영화들이 개봉되기 전에 복사된 비디오를 빌러오기도해 친구들 사이에 비디오에 관한 한 정평이 나있었다. 비디오 레코더가 2개 있는 같은 반 친구에게 또 복사하게 하려다 교실에서 음란 비디오가 나도는 것이 들켜 3명의 학생과 함께 정학 당했다.
집에 일본 위성방송의 수신장치를 갖추어 이를 통해 녹화한 비디오를 가지고 있는 임모군(17·K고2년)은 학교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뉴 키즈 온더 블록」등의 MTV(음악텔리비전), 「소년대」「안전지대」 등 일부 그룹의 공연 장면을 약간이나마 녹화해두면 공식적으로 구하기 어려운 비디오 프로그램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충무로의 한 지하상가에 일본 만화영화를 복사한 비디오를 구입하러 온 한 학생은 『친구5명이 모여 2천원씩 각출해 1만원에 복사한 비디오를 구입하고 돌려보거나 이를 다시 복사해 나눠 갖는다』고 말한다. 자신은 일본에 있는 친척으로부터 만화영화 15개를3배속 잠시간으로 복사해준 것을 선물 받았기 때문에 최근작은 이미 섭렵하고 보다 성인취향의 「화끈한」것을 찾아왔다고 한다. 일본 만화영화 중 『공중성 라퓨타』『바람의 나우시카』『아키라』등은 최고 인기작이고 여느 액션 영화보다 흥미진진한 수준작이란다. 이런 작품과 『시티 헌터』30여편 시리즈 등을 보지 않고는 이들의 대화에 끼기 어렵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수입되는 일본만화 『드래건 볼』『공작왕』 등은 국민학생용이라고 치부한다.
어려서부터 비디오를 보고자란 청소년들의 비디오에 대한 의식은 성인들을 훨씬 앞서가고 있다.
비디오가 청소년들에게 열어놓은 것은 눈치보며 어른들만 보는 극장개봉영화를 보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접해보지 못했고 이해하기 어려운 환상의 세계다.
비디오점 회원 카드가 있어 편당 1천원씩에 빌려본다는 최모양(15·S여고1년)은『 매달 시험이 끝날 때마다 친구들과 돈을 모아 최근 개봉 영화를 중심으로 하루4, 5편 정도 부모님이 밖에 나간 시간에 모여서 본다』고 말한다.
이제 앞서가는 이들에겐 『홍콩에서 들어온 폭력 액션물은 수준이 떨어진다』고 여겨진다. 서울 대치동에서 「그랜드 비디오」점을 운영하는 박영호씨(29)는 『부모들의 지도와 비디오 대여점의 의식이 나아져 청소년 고객은 최근 30%미만으로 줄어드는 편』이라며 『최근의 비디오는 대부분 청소년들이 극장개봉영화를 선호하고 3류 폭력물은 인기가 매우 떨어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공연윤리외가 붙인 「푸른 띠」의 청소년용 비디오, 서울 YMCA가 지정한 「청소년을 위한 비디오 1백30선」 등은 자극적인 비디오에 단련된 청소년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어렵고 그나마 주택가 소규모 비디오점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국교생들은 미국 「WWF프로레슬링」비디오를 통해 웬만한 레슬러의 이름은 물론 특기까지 줄줄 외고 있다. 극히 일부일지 모르지만 CF처럼 짧은 화면들이 현란하게 지나가는 뮤직비디오, 실체와 같은 정교한 그림과 기상천외한 내용을 담은 만화를 즐기는 청소년들은 폭력·섹스물만 못 보게 하면 된다는 어른들의 비디오에 대한 안이한 이해를 훨씬 넘고있다. <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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